외국인 지문 등록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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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3월 경기도 성남시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에서 중국인 왕모(당시 32세·여)씨가 목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가스밸브에서 선명한 지문 2점을 발견했다. 범인이 범행 흔적을 없애기 위해 화재를 내려 했던 흔적이었다. 범인을 잡는 것은 시간 문제인 듯 보였다.

그러나 자동 지문감식 시스템(AFIS) 검색에서 일치하는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이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옆집에 사는 주민이 사건 직전 피해자 방 쪽에서 중국인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경찰은 광범위한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아직까지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성남 수정경찰서 강력팀 문내식 경위는 “범인이 내국인이었으면 벌써 잡았을 것”이라며 “전형적인 ‘유령’ 사건”이라고 말했다. ‘유령’은 형사들 사이에서 지문 같은 증거를 확보하고도 범인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2004년 1월 경기도 안산시의 한 복권방에서 일어난 여주인 살인 사건도 유령 사건으로 분류된다. 경찰은 현장에서 9점의 지문을 채취했지만 역시 일치한 지문이 없어 5년째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송병선 경기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내국인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유령은 외국인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법무부가 외국인 지문 등록 재도입에 나선 것은 이처럼 외국인 범죄 수사에 맹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지문 등록이 중단된 것은 2004년이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관련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다만 법을 위반해 수사를 받는 외국인에 한해 지문 날인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내국인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면서 지문 등록을 하는데, 외국인만 안 하도록 하는 것은 역차별”이란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범행 초기에 검거하지 못해 추가 피해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3~7월 경기도 김포 일대 70여 곳의 가정집을 털고 다녔던 중국인 3인조 절도단의 경우 경찰이 이미 현장에서 지문을 확보했음에도 수개월의 탐문 조사를 벌인 뒤에야 체포할 수 있었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는 “만일 폭력조직에서 외국인을 청부살인에 이용하면 범인 잡기가 더욱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변사자 신원 확인이나 출입국 관리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올 4월 서울 금천구 독산동 아파트 14층에서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50대 남자가 투신해 숨졌지만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올 6월 마약류 판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중국인 유학생 2명 중 한 명은 2007년 보이스피싱으로 거액의 돈을 챙긴 혐의가 적발돼 추방된 뒤 여권을 위조해 재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각종 범법행위로 강제 추방된 외국인들이 여권의 영문 이름만 바꿔 입국 심사에서 통과하는 사례도 많아 지문등록제도의 필요성이 크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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