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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지역 불평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2호 35면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커플의 얘기를 엿듣게 되었다. 남자는 도로·대중 교통이나 병원·학교·마트 등 생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자 아파트 입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뉴스 내용을 언급하면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물이 우선 지어지는 것은 큰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인프라의 문제가 단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인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 음악인에게 있어서의 기반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대도시의 주요 공연장부터 지방 소도시의 시민회관까지 공연한 경험이 있다. 음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최고의 시설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공연장에서는 피아노 소리조차 잘 나지 않았다.

지난해 콘서트 투어를 하는 동안 봤던 공연장 중에는 무대 감독, 조명 감독, 음향 감독을 한 사람이 도맡은 경우도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음향을 조정하는 콘솔 데스크는 무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고, 3개 감독을 겸직하는 사람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워 보였다. 밥은 있는데 반찬이 없는 격이었다. 대도시 공연장은 그래도 큰 불만 없이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더 많은 도시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나의 바람은 그저 욕심으로 남게 됐다.

대조적인 사례는 외국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몇 해 전 일본 지바현 다테야마라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소박한 동네에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는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잘 갖춰진 무대 시설, 대기실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의욕적인 모습이 큰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음악인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반 시설은 공연장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공연장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공연장 등의 문화 공간이 적다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직접 전국의 공연장을 돌아본 경험에서 확신하는 것은 근래에 많은 연주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최근에 새로 준비된 공연장들의 시설은 매우 뛰어나며, 연주자에 대한 배려가 확연히 느껴지는 공연장도 다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음악의 인프라가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균형이다. 시설이 확충되는 것은 주로 대도시 위주다. 전국 투어 공연을 하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지방 소도시의 공연장 시설은 아직도 턱없이 열악한 환경임을 매년 실감한다. 몇 년째 개선 없이 기존 시설 유지만을 해오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격차가 지역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간 문화수준의 균형은 공연장 시설 균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장 신설 및 기존 공연장의 재정 지원 등을 통해 장기적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대도시 최신 공연장들의 기획 공연을 살펴보면 대형 연주자 중심의 콘텐트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높게만 느껴지는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벽을 공연장의 노력으로 많이 낮출 수 있었던 것은 맞다. 또 대형 연주자의 공연이 있어야 매출 보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훌륭한 실력의 신인 음악인이 너무도 많다. 이들은 탄탄한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나 또한 신인 시절 공연장의 높은 문턱에서 좌절한 적이 많았다. 가사 없는 연주 음악에 대한 공연장들의 냉대에 소외당하기도 했다. 신인 발굴 프로젝트 등의 좋은 취지의 공연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신인 음악인들에게는 공연장의 문은 멀고 높게 느껴진다.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 음악인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은 아주 간단한 곳에서 시작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바로 더 많은 음악인들에게 열려 있는 공연장 말이다. 음악인이 목말라하는 ‘연주할 수 있는 공간’과 또 이 공간을 통해 ‘연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이것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인프라보다도 소중하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지역구 등을 중심으로 문화도시 구축 및 문화시민 육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 인프라가 개선되고 있다. 공연장에 대한 국가의 장기적인 지원이 음악인의 활동 기반을 만든다. 또한 결국 문화도시 구축, 문화시민 육성의 기본 틀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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