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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者에 대한 예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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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132호 15면

추석이 다가오면 해외로 여행 가는 사람도 많지만 벌초기에 다치고 벌에 쏘이면서도 성묘에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산업화·세계화가 됐어도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이 우리 심성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는 영혼이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이나 부처님과 하나 될 것을 주문하는 반면, 무속은 귀신을 섬기고, 유교는 조상의 혼령을 돌본다. 굿은 구천을 떠도는 원령이나 사령과의 만남이고,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예학(禮學)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위패를 모시지만, 무속에서는 명주로 혼백을 만들어 혼백상자에 담거나 뼛가루를 담아 모시기도 한다. 제사 때는 문을 열어 귀신을 초대하고, 구천을 헤매는 혼과의 대화가 무가(巫歌)라 할 수 있겠다. 지노귀굿 중에는 무당이 무명과 베를 가르며 혼백을 저승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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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도 게르만이나 켈트족 고유의 샤머니즘 영향으로 원탁에 둘러앉아 손을 맞잡고 귀신을 부르는 영매(靈媒:Medium)가 있고, 유골을 항아리에 모시는 전통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무당은 바리데기, 생불할망(삼신할머니)이나 저승할망 같은 신화 속 인물과 정도전, 최영 장군, 남이 장군, 단종, 박정희 대통령 같은 역사적 인물을 몸주로 모시기도 한다. 일본의 신도(神道)도 조상신을 섬긴다는 점에서 우리의 무속과 유교를 절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남의 종교에 대해 뭐라 단정 짓기 전에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사후세계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공자님이 살아 계시던 시기에도 무속의 영향으로 귀신을 모시고 살며 불합리한 일이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제자들이 공자에게 귀신이 과연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공자는 사후세계나 영혼에 대해 즉각적인 결론을 내리는 대신 현실 세계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은 다음의 일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아주 겸손하고 합리적인 대답을 남긴다. 물론 귀신이 시키는 것이라며 대중을 미혹시키는 무당이나 도당에 대해서는 단호한 경고를 하기도 했다. 헛되이 귀신에게 집착하고 현실을 희생하는 대신, 살아 계신 부모의 곁을 멀리 떠나지 말고 묘를 돌보는 일과 제사를 성실하게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공자 자신이 남편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후처의 자식으로 태어나 억세고 말 많은 손위 이복누이들의 반대로 아버지 묘도 찾지 못하고 제사도 참여할 수 없는 개인적 한이 깊었기에, 어쩌면 조상을 모시는 의식을 더 강조했던 것도 같다.

인기 여배우의 유골을 가져가 함부로 굴린 범인이 잡히더니, 이번에는 어떤 보수 단체(나이 많고 돈지위가 있으면 다 보수인지는 모르겠지만)가 전직 대통령의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도 예의를 갖추어 대접하고 그 시신을 함부로 않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와 돌아가신 나라의 큰 어른에 대해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은, 시신을 욕보이고도 부끄러움과 후회가 없는 사이코 패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정적을 파직하고 참수하는 것도 모자라 부관참시를 서슴지 않았던 간신들이 활개 치던 조선과 지금이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묻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대상에 대한 감정과 집착이 그렇게 뿌리 깊은 것을 보면, 파괴적 콤플렉스의 힘이란 참으로 강하고 질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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