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총기협회, 잇단 총격사건 불구 규제법안 부결시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컬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이 총기남발 때문에 일어났다구요. 무슨 소리…. 오히려 경비원중 한 명이라도 총기를 갖고 있었으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니까요. 총기규제가 강화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

컬럼바인 사건으로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던 지난 1일 미 총기협회 (NRA) 연차총회에 참석한 영화배우 출신의 찰턴 헤스턴 회장은 오히려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26일 (현지시간)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총기규제법안을 이번주내에 하원 전체회의에서 의결하자는 민주당의 제안을 19대13으로 부결시켰다.

지난 20일 상원에서 통과한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이번 부결은 미 총기협회의 승리" 라고 보도했다.

NRA가 내년 대선과 의회선거를 미끼로 또다시 조직적인 로비활동을 벌여 법안 통과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NRA는 자금력.조직력.동원력의 3박자를 모두 갖춘 막강 파워를 지니고 있다.

지난 96년 대선때 민주.공화 양당에 모두 7천만달러를 선뜻 내놓았던 NRA는 98년 중간선거 때는 1억달러를 기부했다.

총기규제단체의 헌금 액수가 연간 14만8천달러이니 로비력면에선 일단 상대가 안된다.

헌금 대상자는 주로 '프로 건 (PRO GUN)' 이라고 불리는 총기규제 반대 의원들로 공화당 의원들이 대다수. 리처드 루거 전 외교위원장.댄 퀘일 의원 등이 대표적인 인물. 민주당에도 샘 넌 위원장 등 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는 빠짐없이 자금이 흘러가고 있다.

또한 2백70만명의 조직원들은 총기규제법안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일제히 편지.팩스 공세 등의 집단행동에 나선다.

정보망도 수사기관을 뺨칠 정도다.

오클라호마 시티 연방빌딩 폭파사건 때도 용의자의 얼굴형태를 FBI보다 빨리 파악한 곳은 다름 아닌 NRA다.

그러나 최근 컬럼바인 총격사건 이후엔 "NRA가 '장삿속' 을 챙기기 위한 큰 권력집단처럼 돼 버렸다" 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어 과연 이번에도 '무풍지대' 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미지수다.

김현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