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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주양 유괴범' 출소…교도소서 번돈 육영재단 기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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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상을 놀라게 했던 흉악범이 20년만에 온몸으로 속죄하며 새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79년 정효주 (鄭效朱.당시 9세) 양 유괴범으로 석탄일 (釋誕日) 을 맞아 21일 대전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이원석 (李元昔.45) 씨.

그는 출소 후 곧바로 여동생 (36) 과 함께 서울광진구 어린이회관을 찾아가 19년동안 교도소 공장에서 일하며 받은 작업 상여금 1백50여만원이 담긴 저금통장을 육영재단에 전달했다.

"죄많은 사람을 다시 받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한다" 고 주위 사람들에게 첫마디를 꺼낸 李씨는 "죄인을 돌봐주신 박서영 (朴書永.45.육영재단 이사장) 씨를 찾아왔다" 고 말했다.

李씨가 이곳을 찾은 데에는 20년 전 고 (故)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과 얽힌 사연에서 비롯된다.

효주양이 李씨에 의해 유괴되자 朴전대통령은 "효주양을 돌려보내면 관대히 처벌하겠다" 며 담화문을 발표했었다.

李씨는 곧바로 효주양을 풀어줬으나 그는 탈영병 신분으로 군법재판을 받고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다 朴전대통령의 둘째딸 서영씨가 지난 90년 법무부에 '아버지의 약속에 따라 선처해주기를 바란다' 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 李씨는 20년 형으로 감형받았다.

이같은 서영씨의 도움을 알고 있던 李씨는 지난해 본지에 실린 '어린이회관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 는 기사 (98년 2월 7일자) 를 접하고 이날 가석방되자 작업 상여금을 전달키로 한 것이었다.

李씨는 "지난 83년 "현생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불자가 되었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효주양과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절을 했다" 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행정학 전공의 독학사 과정을 밟아 온 李씨는 "유괴라는 범죄가 사라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고 말했다.

이날 李씨를 만나지 못한 서영씨는 "2~3일 뒤 따로 만나고 싶다" 는 의사를 전달했다.

◇ 효주양 유괴사건 = 79년 4월 부산 M수산 대표의 외동딸이었던 정효주양이 등교길에 납치됐다.

범인 李씨는 효주양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부모에게 보낸 뒤 현금 1억5천만원을 요구했다.

78년 9월에도 다른 유괴범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는 효주양이 또다시 유괴당하자 부모가 TV를 통해 "딸을 살려 보내달라" 고 호소했으며 사건발생 5일 뒤 대통령이 직접 특별담화문을 발표하며 자수를 권고했다.

담화 발표 직후 효주양을 경부고속도로에 내려놓은 李씨는 80년 12월 검거됐다.

현재 정효주씨는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언.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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