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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한용운 평화론은 동아시아의 사상적 자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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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00여 년 전 동아시아는 불안한 곳이었다. 중국이 감지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는 현실이었고, 일본의 제국주의는 대동아공영권이란 악몽을 낳았다. 한 세기 전의 위기는 우리에게 망국(亡國)의 한을 남겼고, 그 연장 선상에서 한반도는 아직도 분단상태다. 21세기의 우리에게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서구 중심의 패권적 세계질서가 최종적으로 종결될 수 있는 평화적 상상력을 이 지역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재발견’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18일 오전 10시~오후 7시 서울 태평로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열린다. 서남재단(이사장 이관희)이 주최하는 행사다. 서남재단은 동양오리온그룹의 창업주 고(故) 이양구(1916~89) 회장이 설립해 20여 년 간 꾸준히 학술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95년부터 내기 시작한 ‘서남 동양학술총서’는 최근 51권째를 기록했다. 한국사회에서 선구적으로 ‘동아시아 담론’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다.

이젠 동아시아 담론이 학계에서 주류화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1985년 이래 동아시아 주제의 서적만 470여 종에 이를 정도다. 학술적 차원만이 아니다. 해외유학과 국제 결혼 등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한류의 확산은 일상 속에서도 ‘동아시아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동아시아 길 찾기’는 한반도에서=이번 학술대회에선 동아시아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한반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된다. 북한의 핵무장을 둘러싼 6자 회담은 동아시아의 복합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임춘성 목포대 중문과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이 지역의 복잡한 지정학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한반도. 동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부재하는 일본. 반대로 동아시아에 부재하면서도 현존하는 미국·러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서는 중국.” 이렇게 동아시아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력들이 이 지역의 안보 위기에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본질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기조 강연을 맡은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한반도의 분단을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작업이야말로 동아시아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미래에 동북아를 포괄하는 ‘국가연합’을 구상한다면 그 비전의 중핵으로서 남북한의 연합에 의미 부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험에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과정이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아시아는 세계를 향해 열린 지역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지역을 넘어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동아시아적 사상과 감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런 점에서 임춘성 교수는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한용운의 우주적 혁명론 등도 우리만 전유할 게 아니라 동아시아인의 사상적 자원으로 공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의 인적 교류=이혜경 배재대 미디어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국제결혼을 통한 동아시아의 인적 교류를 분석했다. 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일본은 태국·필리핀 등과의 교류를 통해 향후 2년 간 1000명의 외국인 간호사를 채용할 계획이다. 타이완에선 “부자는 간병인, 빈자(貧者)는 외국처”라는 농담이 있다. ‘순종적인’ 저개발 국가의 신부를 데려와 가정에서 시부모 수발을 들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결혼 기피와 저출산 문제가 국제결혼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순수한 국내 문제, 심지어 ‘집안 문제’마저 국제적으로 해결되는 상황이다. 국가·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동체적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기무라 미키(杉村美紀) 일본 소피아대 교육학과 교수는 “동아시아의 역내 유학 교류가 아시아를 기점으로 한 글로벌한 시야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중요해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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