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상 14명이 만든 맛갈난 ‘고운우리반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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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내 손으로 번 돈이잖아. 한턱? 두턱 냈지, 하하”

김청자(68·덕양구 식사동) 할머니는 지난달 첫 월급 타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뿌듯하다”고 했다. “괜히 무리하다 몸이 상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며 말리던 딸들도 이젠 “돈 많이 벌어 맛있는 것 또 사달라”며 농담을 한단다.

“아침에 눈뜨고 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

옆에 있던 도정애(64·덕양구 화정동)할머니가 말을 보탰다.

이들의 일터는 ‘고운우리반찬’(토당동 능곡초 육교 앞). 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이 수익 창출형 노인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지난 7월 13월 문을 연 반찬 판매점이다. 56㎡ 남짓한 이곳 운영은 60세 이상 어르신 14명이 맡고 있다. 이 중 12명은 조리와 매장 판매를 담당한다. 3명이 한 팀을 이뤄 하루 4시간씩 일한다. 근무시간은 두 달에 한 번 조정한다. 나머지 2명은 복지관 내 판매점을 맡았다.

복지관이 ‘어르신들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일’로 착안한 후 이 사업을 준비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있는데 인근 대형마트에 반찬점이 없는 점을 감안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어르신 선발도 엄격한 공모절차를 거쳤다.1차 합격자들은 한 달간 조리전문학원을 다니고 면접을 봤다. 지정과 자유 종목으로 나눈 실기시험으로 직무능력평가도 했다.

“하루 세 끼, 40년 넘게 해온 일인데도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떨렸다”는 김 할머니는 “실기시험 볼 때엔 대장금이 음식하던 드라마 장면이 떠오르더라”며 웃었다.

판매되는 반찬은 김치·전·젓갈·국·찌개·나물·멸치볶음 등 60여 가지다. 국내산 재료만 사용하는 건강식이다. 지난 여름철엔 풋고추에 밀가루를 묻혀 쪄낸 고추찜과 직접 만든 식혜의 인기가 높았다.

유명호텔 주방 경험이 있는 청일점 윤형우(62·일산구 일산동) 할아버지는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지만 맛은 넣은 것보다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윤 할아버지 말고도 이곳 상당수 어르신이 조리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막상 요리를 하려면 신경이 쓰여 집에서 연습한다”는 도 할머니는 “서로 요리법을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일해 솜씨가 늘었다”고 소개했다. 장을 보러 가면 반찬점에 먼저 발이 닿는다는 김 할머니는 괜찮은 식자재가 눈에 띄면 판매점 주인 명함을 챙겨오는 습관도 생겼단다.

새로운 메뉴는 단가 계산과 시장 조사를 거쳐 복지관 담당자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결정한다. 반찬은 되도록 조금씩 자주 만든다.한꺼번에 많은 양을 요리하면 재료 손실이 적고 힘도 덜 들지만 그만큼 맛이 떨어져서다.

어르신들은 수익과 상관없이 매달 고정급을 받는다. 수익금의 일부는 무의탁 저소득층 노인 후원에 쓰인다.

“조리만 하는 단순직이 아니라 직접 매장을 운영하고 이웃도 도울 수 있어 보람되다”는 윤 할아버지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건강한 음식을 이웃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복지관의 김지선 사회복지사는 “매장이 생긴 후 근무를 희망하는 어르신들의 문의가 많아졌다”며 “아파트 부녀회와 연계해 아파트 장터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반찬은 1팩당 2000~3000원. 오후 8시에 매장에 들르면 할인된 가격으로 반찬을 살 수 있다. 

문의=031-978-3800


[사진설명]
‘고운우리반찬’에서 일하고 있는 도정애·김청자 할머니와 윤형우 할아버지(왼쪽부터)가 자신들이 만든 반찬을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고운우리반찬'의 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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