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그때 오늘

종교·문학·건축 대혁신 … 중세는 ‘암흑기’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시그램 빌딩. 뉴욕 고층빌딩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서양 역사에서 중세 천 년은 한때 ‘암흑시대’로 불리면서 폄하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세 한복판인 12, 13세기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 때문이다. 변화는 먼저 종교에서 시작됐다.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 꿇은 ‘카노사의 굴욕’ 사건(1077)으로 교황권이 강화되자, 12세기에 들어 가톨릭의 제도가 확립됐다. 7성사의 교리가 확정됐고, 특히 마리아 경배가 교리로 정착했다.

마리아 경배와 더불어 문학에 변화가 왔다. 11세기까지만 해도 문학은 대부분 영웅적 서사시 형태로 서술됐다. 남성적인 전사들이 도끼를 휘두르는 장면이 나오고, 전투·명예·충성 등이 그 주제였다. 그러나 12세기의 마리아 경배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됐고, 그 결과 문학에서 서사시를 대신해 ‘로맨스’라는 장르가 새롭게 등장했다.

건축에도 극적 변화가 나타났다. 12, 13세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고딕 양식으로 대치됐다. 두 건축 양식은 문학에서 서사시가 로맨스와 다른 것처럼 현저히 달랐다. 고딕 양식은 로맨스가 등장한 12세기에 프랑스에서 나타났는데, 로마네스크에 비해 한층 더 여성적이고 세련되고 우아했다. 로맨스에서 나타났던 여성적 특징이 고딕 양식에서도 똑같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새로 건립된 대성당들이 모두 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각지에 수많은 ‘노트르담’ 성당이 건립됐고, 당연히 모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됐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 즉 ‘마리아’를 뜻한다.

고딕 양식의 급격한 수용과 발전은 12세기가 현대 못지않게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역대 프랑스 국왕의 묘지였던 성 데니스 수도원 교회는 1144년에 새로운 고딕 양식의 훨씬 규모가 큰 교회를 짓기 위해 헐렸다. 역사가들은 그것이 마치 워싱턴의 백악관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미국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가 설계한 초현대식 빌딩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일이 오늘날 일어난다면 아마 엄청난 논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12세기에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과감한 실험 정신과 자기 쇄신 능력은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 아닐까.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