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 종교를 피해가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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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만민중앙성결교회 신도들이 11일 밤 MBC 방송을 중단시킨 사건으로 인해 신문과 방송이 모두 떠들썩하다.

방송내용에 불만을 품은 집단에 의해 이런 식으로 방송이 중단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충격적인 일로 비춰질 만도 하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을 해보면 그리 예측 못할 일도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 한국에서 거의 견제받지 않고 권력을 누리고 있는 강력한 집단 두 가지를 들라면 바로 방송국을 비롯한 언론집단과 종교집단을 들 수 있다.

두 집단 모두 자신들이 '진리' 를 선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진리' 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서로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언론과 종교는 될 수 있는 한 상대방에 대해 간섭하려 하지 않는 것을 여태까지의 관례로 삼아왔다.

정치와 종교간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설정된 정.교분리 원칙처럼, 언론과 종교 역시 비판을 자제한 채 서로 좋은 면만을 부각시킨 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11일 밤의 사건은 지금까지의 '신사협정' 을 방송국쪽에서 지킬 의사가 없다고 하자 그 상대방 종교집단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해 나타난 것이다.

이제 그 실력행사의 도가 지나쳤음이 명백한 이상, 만민교회측에서는 사과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수습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여전히 자신들이 '정의' 롭다는 것을 양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들은 교회에서의 병고침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기독교와 병고침의 연관성은 예수에게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신유 (神癒) 의 은사는 다른 교회에도 현저하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만민교회가 이단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공영방송국의 입장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사항이다.

이단과 정통의 문제는 그 교회가 속한 교단의 문제이지,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윤리적.법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만민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이 법에 저촉된 행동을 했는가, 혹은 윤리적으로 지탄받을 행위를 저질렀는가를 따지는 일이 핵심적 요점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법적.윤리적 혐의가 있다면 어느 집단이라도 잘잘못을 따지는 일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없으며 방송국측의 "성역은 없다" 라는 주장은 이런 입장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교회신도들은 한국사회에서 혐의를 두는 것 자체가 유죄를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하며, 혐의 자체를 봉쇄하려 한 것으로 여겨진다.

혹은 도대체 누가 누구를 나무라느냐는 식의 항변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저번에 있었던 김홍도 목사와 MBC방송사와의 갈등상황이 주요한 준거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만약 만민교회신도들이 이번 경우가 저번처럼 수습되지 않는다면 다만 '우리' 의 힘이 부족해서일 뿐 이라고 주장할 때, 어떻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할지 난감한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여태까지 언론에서 종교를 다뤄왔던 태도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종교문제는 공적인 언론에서 될 수 있는 한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측면은 다루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 처럼 여겨져왔다.그래서 종교집단의 공식적인 주장만을 그대로 싣는다거나 자랑할 만한 점을 부각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유독 언론에서 비판의 소리가 드높아질 때는 이른바 '사이비종교' 에 대한 기사의 경우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를 우리의 살아가는 문제의 하나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담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당장 종교에 심각히 영향을 받고 또 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다른 인간활동에 기울이는 관심만큼 우리생활에서 종교가 차지하고 있는 긍정적.부정적 위상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종교문제를 공적 언론에서 취급하는 것은 "언제나 손해" 일 수밖에 없기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거나, 기존의 권력질서를 재생산하는 식의 종교적 담론만을 유포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 대해 언론이 어떤 교훈을 배우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이런 사건이 계속 재발할 것이냐 아니냐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장석만 서울대 강사.종교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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