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희망찾기] 2. 어린 금강송의 숨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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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람의 숲에서 몹시 고독한 날, 울진 소광리 소나무숲을 찾아나섰습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등성이를 타고 굽이굽이 계곡을 거슬러 오르고 올라 마침내 소나무숲에 섰을 때 아, 하늘을 떠받치듯 우람하게 서있는 소나무들. 붉은 살, 푸른 빛의 곧게 선 소나무들. 그 장엄한 소나무숲의 기상에 모든 것이 문득 정적, 원시의 솔바람 소리 가운데 깊은 정적이었습니다.

척박한 우리 땅에 이처럼 웅장한 소나무숲이 살아 있었다니. 기나긴 세월을 말없이 원형 그대로 살아 있었다니. 휘고 굽은 소나무가 우리 민족 전형의 아름다움인 줄 알아왔는데, 우리 소나무의 참모습은 이토록 당당하게 땅에서 하늘로 곧게 뻗어 있는 금강송이라니.

"소광리 1천6백㏊의 소나무숲에는 5백년생 금강송이 다섯 분 계시고 3백년.2백년생이 어림잡아 8만여 분 계십니다. 금강송은 30m가 넘게 자라도 나무줄기에 굽은 데가 하나 없지요. 껍질은 얇고 붉으며 나뭇결이 균일하고 뒤틀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단하고 가벼운데다 향기마저 진합니다.그 독한 솔잎혹파리조차 범접하질 못해요. 이것이 우리나라 모든 산맥에 무리지어 우뚝 서있던 우리 고유의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이것이 조선 소나무의 원형입니다. "

67년 산림청에 입사한 이래 오직 한 길로 이 나라 숲을 가꾸며 살아온 울진국유림관리소 남화려 소장의 잔잔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어언간에 소나무를 닮아가는 맑은 얼굴을 접하는 것은 또다른 감동이었습니다.

한창 숲 가꾸기를 하고 있는 현장에는 '푸른 숲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미래가 있다' 는 현수막이 바람에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어요. 남화려 소장은 실직자들과 함께 숲 가꾸기를 하는 요즘 심경을 "서럽게 고맙다" 고 표현하더군요. 저는 남소장님께 우리나라 산림의 역사를 청해 들었습니다.

한일합병 이전만 해도 조선 산골짝에는 수백년 된 금강송들이 울창했다고 합니다.

일제 때 그 좋은 소나무들을 모조리 베어가고 송진까지 짜내간 거지요. 6.25전쟁으로 남은 산림마저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1962년에야 산림법이 만들어져 우선 급한 대로 잣나무.아카시아.오리나무.현사시.리기다 등 빨리 자라는 연료림을 조성하게 되었지요. 70년대에는 경제성장과 수출제일 정책에 따라 탄광 갱목으로 쓰일 나무들이 베어졌고 교육열이 오르면서 교과서.학용품.신문용지로 펄프용 목재가 잘려나갔습니다.

88올림픽을 치르고 나니 그때야 '산림의 질' 에 눈뜨게 되었어요. 세계에서 최단기간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는데 막상 쓸 만한 나무가 없는 겁니다.

숲을 그대로 방치하면 잡목만 우거지게 되고 맙니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은 숲 가꾸기에 대한 예산배정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다 IMF 이후 처음으로, 정말 역사상 처음으로 실직자들과 함께 숲 가꾸기가 시작된 거지요.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2백년생 금강송 한 그루 값이 쏘나타 한 대 값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소광리 소나무숲에서 한 달간 채취한 송이버섯만 해도 1백억원이 넘으니, 잘 가꾼 숲은 그대로 무한한 국부의 원천인 거예요. 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자기 대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1백년 후의 손자 대를 내다본다고 합니다.

이제야 우리는 그 첫 걸음마를 내디딘 셈이지요. 저는 산림의 역사를 들으며 안으로는 우리나라 인재의 역사, 교육의 역사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땅에서 발생한 일은 곧 그 땅의 아이들에게도 닥칠 것이다" 는 말처럼 그 나라 숲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은 슬프도록 서로 닮기 때문입니다. 조선조의 동학혁명과 천주교 박해로 이 나라 숱한 인재들이 죽어갔습니다.

일제 때 조선땅의 참한 소나무가 모조리 베어져 나가듯 조선의 젊은 인재들은 학병으로,징용으로, 유민으로, 독립군으로 이 땅에서 뿌리뽑혀나갔지요. 그나마 남은 숲이 6.25전쟁으로 불타 헐벗듯 좌익과 우익, 남과 북의 극한 대립으로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도 살상당하고 숙청당했습니다.

60년대에야 조림을 시작해 세계 최단기간에 산림녹화에 성공했듯 주입식 국민교육으로 우선 경제성장에 써먹기 좋게 인재를 대량생산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쓸만한 나무가 없어 뒤늦게 숲 가꾸기에 나서듯 사회 곳곳에서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거지요. 그리하여 겨우 지금에야 '준비 안된' 교육개혁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튼실한 나무가 단번에 자라나지 않듯 훌륭한 인재 역시 하루아침에 커나오는 건 아니지요. 지난 70, 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은 수많은 젊은 인재들을 시대의 문제아.저항아로 내몰았습니다.

금강 송같은 곧은 양심과 푸른 열정을 죄인으로 만들어 거리로, 감옥으로 추방해버렸습니다.

그 엄청난 사회적 손실과 인재 희생의 대가를 우리는 지금, 지구시대 큰 변화에 뒤처진 모습으로 비싸게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금강송이 베어져나간 자리엔 휜 소나무와 잡목들이 어우러져 그것이 최선인 양 안주하고 맙니다.

험난한 현대사 속에서 우선 살아남기 위해 원칙과 도의를 뒤로 하고 뒤틀린 현실과 하나 둘 타협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원형인 듯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미래를 지고나갈 젊은 세대들조차 오직 일류대를 나오고, 출세고시에 합격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오고, 인기스타로 뜨는 화려한 외양이 삶의 중심가치로 전도된 현실이지요. 척박한 토양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낸 굽은 소나무들이 보여주는 곡선의 미학도 존중돼야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정 우리 삶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미래가 있는 올곧은 삶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게 구부러지고 모두가 모두를 닮아갈지라도 작은 원칙, 작은 정의, 작은 실천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흔들리는 내 한 걸음, 한 걸음을 첫마음에 비추어 성실하게 내디뎌가는 사람. 금강송같이 좋은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서로를 키우며 이뤄내는 푸른 숲속에서 저는 좋은 세상으로 가는 새벽길을 찾아나섭니다.

소광리 숲속에서 눈을 감고 보았습니다.

머지않아 이 나라 온 산과 산에 아기 금강송이 우람우람 자라나는 모습을. 어린 금강송의 앞길에는 수시로 산불이 덮쳐오고 사나운 솔잎혹파리 떼가 살을 뜯고 순식간에 성장하는 잡목 덩굴이 여린 몸을 짓누를 것입니다.

이 절망스러운 악조건과 무한경쟁의 도전을 무릅쓰고 어린 금강송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자라겠지요. "사람이 없다" 고 한탄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이미 어린 금강송 같은 사람들이 거센 유혹과 시련을 거름삼아 소리없이 커나오고 있음을 저는 눈이 부시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봐요. 들리지 않나요. 그대 안에서, 내 안에서, 서럽도록 올곧게 자라나는 저 푸른 숨소리,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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