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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별거 아빠 기다렸는데…어린이날 앞두고 참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가난이 웬숩니다. 희경이를 내가 죽였어요…" 지난 4일 경북경산시하양읍 동산병원 영안실 - .전날 화재로 변을 당한 초등학생 2학년 전희경 (8) 양의 싸늘한 주검을 부여안고 어머니 (30)가 회한의 통곡을 하고 있었다.

평소 간호사가 꿈이었던 희경이에게 비극이 찾아온 것은 지난 3일. 학교를 마치고 8㎞ 떨어진 영천시화산면용평리 외할아버지댁으로 돌아왔다. 오후가 되자 희경이는 외할아버지 (52)에게 라면이 먹고 싶다고 응석을 부렸다. 외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외손녀에게 라면 4봉지를 사준 뒤 모처럼 목욕외출을 나갔다.

혼자 남은 희경이는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고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냄비과열로 불이 나 옆에 있던 커튼으로 옮겨붙었다. 뒤늦게 연기를 발견한 희경이는 "불이야"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집안 전체로 불길이 번진 뒤여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변을 당했다.

이날 비극은 따지고 보면 오래 전에 잉태되고 있었다. 2년전 아버지 (30) 와 어머니가 별거를 시작하면서 희경이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로 들어갔다.

가난한 친정에 얹혀 살게 된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끼니 벌이를 위해 근처 농공단지 섬유공장으로 나갔고, 이날도 늦도록 공장 일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경제형편 속에서도 희경이는 가끔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시면 좋을텐데" 라고 혼잣말을 했을 뿐 늘 밝고 명랑했다고 한다. 희경이가 결석 (?) 한 4일 같은 반 친구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영천 =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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