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학 휴교, 어르신 노래자랑 취소, 경로당 발길도 뚝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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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도원동 한 아파트 단지의 노인정.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산성당의 이상순(47·여) 노인대학장이 노인 10여 명의 귀에 체온계를 넣고 체온을 재고 있었다. 그는 요즘 매일 서너 곳의 경로당·노인정을 돌며 노인들의 건강을 체크한다. 이달 첫째 주에 개학하기로 한 노인대학을 임시 휴교했기 때문이다.

이 학장은 “신종 플루가 노인분들에게 치명적이라고 해서 휴교 결정을 했다”며 “경로당·노인당에도 신종 플루가 걱정돼 나오지 않는 노인이 많다”고 말했다.

신종 플루(인플루엔자 A/H1N1)로 인한 사망자가 잇따르면서 노인층을 중심으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주말 숨진 3명의 환자가 모두 60, 70대인 것으로 알려지며 바깥 출입까지 자제하는 이들도 생겼다.

특히 노인대학과 노인복지관은 이용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 약수노인종합복지관은 노인 방문객이 2주 전보다 30명 정도 감소했다. 복지관 김유선(29) 과장은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앓으시는 분들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나머지 분들도 손 살균제를 열심히 사용하시는 등 조심하는 인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호수공원 안의 노인복지관에서 영어회화와 서예를 배우는 김모(72)씨는 “비슷한 연령대 환자들이 사망했다고 하니 나도 걱정이 앞선다”며 “아들과 아내가 복지관도 나가지 말라고 말려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노인 관련 행사나 교육도 취소되고 있다. 구립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10월과 11월에 예정돼 있던 ‘어르신 노래자랑’과 발표회를 취소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인대학연합회도 다음 달 열 계획이던 ‘노인의 날’ 경축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김인숙 사무국장은 “용산성당 외에도 노인대학 두세 곳이 더 휴교를 했다”며 “신종 플루 유행 초기보다 노인들의 우려가 더 커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탑골공원이나 종묘공원처럼 노인들이 밀집한 일부 지역은 경계심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14일 종묘공원엔 1500여 명의 노인이 대부분 마스크도 없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하루 방문객이 오히려 500여 명 늘었다고 한다. 노인들은 “어차피 나이도 많은데 병이 무섭겠느냐” “전철에서 많이 옮는다고 하지만, 전철이 공짜니 탈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김진경·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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