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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직 전문기자리포트] '계획'만 세우는 제주개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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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제주도에 여섯번째 국제자유지역 계획이 수립된다.

63년 국무총리실의 중계무역 자유항계획, 75년 건설부의 국제교역.수출가공 자유항계획, 83년 국토개발연구원.벡텔사 등의 국제교역.금융자유지역계획 등 제주도엔 이미 유보.취소된 자유지역계획이 상당수다.

제주에는 이처럼 '성과없는 계획' 만 무성해 개발이 오히려 지연됐고, 도민의 허탈감만 늘었다.

20년 넘게 걸린 중문단지는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고, 92년 특별법까지 제정해 지정한 3개 관광단지.20개 관광지구 개발도 답보상태다.

이번엔 어떤 자유지역일까. 다른 때와 달리 이번 계획 주체는 제주도다.

제주도는 자유지역을 반대하던 주민들도 이젠 찬성으로 돌아섰다며 ▶2001년까지 무비자.무관세 자유지역 ▶2002년까지 메가리조트와 오픈카지노 단지▶2006년까지 물류.교역자유지역 ▶2010년까지 홍콩.싱가포르 같은 종합금융센터를 건설하는 방안을 중앙정부에 건의했다.

건설교통부는 이를 받아 "15억원짜리 마스터플랜 수립용역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 법령 등 제도정비를 하겠다" 는 발표를 했다.

다음 차례는 예산당국이다.

그러나 건교부처럼 만만치는 않을 전망이다.

예산당국은 이미 "초기투자가 너무 많이 든다. 투자효과도 의문이다.

다른 곳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다" 며 제주자유지역을 여러번 반대해왔고, 올해초엔 '영종도 자유지역 용역비' 도 배정하지 않아 계획수립을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

더욱이 예산당국은 최근 대형투자사업은 마스터플랜을 세우기 전에 필히 예비 타당성조사를 하기로 방침을 정해놓고 있기도 하다.

이번 자유지역도 결국은 "제주도를 홍콩처럼 만들자" 는 게 궁극 목표다.

89년 한국개발연구원이 종합검토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혔던 개념을 10년만에 부활시킨 셈인데, 제주도는 여기에 슬쩍 카지노단지를 포함해 5백만평 규모의 대형리조트 건설방안을 끼워 넣었다.

당장은 카지노단지를 추진하려는 의도다.

제주도 입장에서는 답보상태에 있는 제주관광시장에는 외자 (外資)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투자가들이 선호하는 카지노를 유치해야 한다는 발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부 도민.전문가들은 생각이 다르다.

3월말 제주대가 주최한 '제주도 관광지개발 정책방향설정에 관한 토론회' 에서 범도민회 이지훈 집행위원장은 "제주의 난개발, 지역의 정체성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 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경기대 이장춘 교수도 "제주개발은 자연친화적으로 문화적.역사적 가치, 경관 등을 두루 고려하되 도민정서를 감안한 개발이어야 한다" 는 의견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외국인은 "관광객들은 제주도에 카지노가 있어 오는 게 아니라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아름다운 섬이기 때문에 온다.

대규모 카지노는 외국인보다는 내국인 시장을 겨냥하게 되고, 그러면 외국인 발길은 더 뜸해질 수도 있다" 고 귀띔한다.

결국 거창한 개발계획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끈기를 갖고 도내 관광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관광비용을 내리는 일이 제주관광 활성화를 위해 더 긴요하다.

섬 전체를 순환하는 안락한 경전철, 일본.중국의 중소도시까지 항공망이 연결되면 더욱 좋다.

장기적으로는 두마리 토끼 - 외화도 벌고 생태계도 보전하는 - 를 한꺼번에 잡을 묘안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절경 (絶景) 과 자연환경, 수억년 된 동굴과 원시암반수, 고유의 풍속과 유적 등 제주에는 다양한 환경상품이 즐비하다.

이 상품을 이용해 제주를 바덴바덴 같은 휴유 (休癒).휴양도시, 21세기 세계 문화인.과학인의 자유창작도시, 신인류를 향한 국제 규모의 특수 농작물센터 등을 건설하자는 전문가도 있다.

21세기 제주를 어떤 사람들이 찾게 할 것인가.

몇 사람이 아닌 국민 모두의 의견을 모아야 할 때인 듯 싶다.

음성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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