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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희귀유전병 남매 키우는 어머니 정선자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정선자 (鄭善子.44.) 씨 가족의 아침은 전쟁터 같다.

어머니 鄭씨는 딸 윤아 (15.창덕여중2.)가 좋아하는 장조림 반찬을 밥 숟가락에 올려주랴, 머리를 빗기랴 정신이 없다.

옆에서는 승준 (14.청운중1.) 이 아버지와 또 승강이를 벌인다.요즘 같은 나른한 봄날 내복을 입으라는 게 불만인가보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윤아와 승준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 일이다.

결국 아버지의 고집대로 됐다.

아이들을 집앞에 주차해 놓은 엑셀 승용차에 태우고 학교로 향한다.

집에서 승준이 학교는 불과 몇백m. 그러나 언덕이 가팔라 승준이에게는 아무래도 무리다.

아버지 임진수 (林眞洙.46) 씨는 승준이를 부축해 교실에 앉혀 준다.

다음은 윤아 차례. 이들 남매는 뇌성마비증세와 비슷한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 (PKU:페닐케톤뇨증) 을 앓고 있다.

PKU란 신진대사에 필요한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유전병. 생후 1개월내 신생아 선별검사로 발견되면 호전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후에는 지능.운동신경 저하를 동반해 심한 경우 지능지수 (IQ)가 50이하로 떨어진다.

단추를 여미는 간단한 동작마저 이들에게는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만큼 어렵다.

그래서 남매의 옷에는 단추 대신 붙였다 뗐다 하는 접착식 테이프가 달려있다.

PKU라는 희귀성 병명을 안 것은 불과 6년 전. 이전까지 두 아이가 그저 뇌성마비인 줄만 알았다.

서울대병원 내분비과 양세원 (梁世元.46) 박사는 "윤아와 승준이처럼 PKU를 뇌성마비로 잘못 알고 손을 쓰지 못한 부모들이 많다" 고 했다.

미국의 경우 1만4천명 중 1명, 일본은 7만5천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는 PKU는 국내에서는 아직 정확한 환자 통계도 잡혀 있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신생아 선별검사의 필수항목으로 PKU검사를 하고 정부가 전액 보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비 검사에 의존해야만 한다.

PKU환자는 의료보험도 안되는 수입 효소약품을 입에 달고 산다.

이 약이 떨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마치 줄 끊어진 인형처럼 사지가 축 처지고 또다시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

그러나 한달 약값만 6백만원. 보통가정에서는 버티기 힘든 액수다.

鄭씨 부부는 주위의 도움을 얻어 5평짜리 보세 옷가게를 차렸다.

살림집도 지하셋방으로 옮겼다.

아이들 약값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鄭씨는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며 "그렇지만 아이들이 특수학급이 딸린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게 행복할 따름" 이라고 말했다.

글 = 홍수현.사진 =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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