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발언'공개 …내각제 3각 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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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이 내각제 공방으로 또 다시 술렁이고 있다.

원체 민감한 사안인지라 DJP의 '8월까지 논의유보' 합의도 안먹히는 판이다.

내각제 논란은 2여 (與) 간 신경전에 한나라당까지 가세하면서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청와대 박지원 (朴智元) 대변인은 28일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지난달 17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의 총재회담에서 '내각제 개헌을 절대 반대한다' 고 밝혔다" 고 털어놨다.

한나라당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부인하면서 "청와대측이 내각제에 뜻이 없다는 본심을 드러냈다" 고 반격을 가했다.

자민련은 내각제 공방이 싫지 않다는 표정으로, 한나라당내 내각제 선호세력과의 물밑접촉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회의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내각제 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청와대가 여야 총재회담에서의 이회창 총재 발언을 폭로한 것은 그런 절박함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청와대는 '4.9 청와대 여권 수뇌부 4자회동' 에서 '8월말까지 내각제 논의유보' 에 합의한 김종필 (金鍾泌) 총리가 최근 국회 예결위 답변에서 "야당 지도부와도 내각제 문제를 협의할 것" 이라고 언급한 사실도 수상쩍게 본다.

고단수 유도전술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이런 마당에 자민련 김용환 (金龍煥) 수석부총재가 야당의원들과 내각제 문제를 놓고 깊숙한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게 감지되자 국민회의측은 바짝 긴장한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한나라당과 자민련간의 내각제 연결고리가 견고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金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각종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 라며 "만일 내각제 개헌논의가 전면에 부상하면 개혁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회창 총재가 확고한 대통령제론자란 점을 애써 부각시키려는 청와대와 국민회의의 의도는 분명하다.

한나라당을 흔들어 내부 분열을 촉진시키면서, 자민련에 대해선 한나라당을 기대할 게 아니란 점을 확인시켜 주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하경 기자

◇ 자민련

자민련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청와대측의 '내각제 공방' 에 침묵하면서도 은근히 사태 추이를 즐기는 표정이다.

8월까지 내각제 함구령이 떨어진 마당에 내각제를 살아 움직이는 쟁점으로 이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최종 국면엔 한나라당측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섣부른 한나라당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도 뚜렷하다.

이회창 총재가 총재회담에서 '내각제 절대불가' 발언을 했다는 청와대측 언급에 대해 김종필 총리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한 측근은 "논박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 이라고 전했다.

자민련도 "발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얘기할 수 없다" (李良熙 대변인) ,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金龍煥 수석부총재) 면서 관망자세를 유지했다.

반면 내각제 휴지기 동안 자민련이 한나라당내 내각제 선호론자에 대한 각개격파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징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9월 이후 내각제 본격화를 위한 토양을 닦는 동시에 국민회의에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 강경파의 한 의원도 내각제 선호론자인 한나라당 중진을 곧 만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자민련의 한나라당측 물밑접촉이 8월전 정국의 새 변수로 부상하는 국면이다.

최훈 기자

◇ 한나라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3.17 여야 총재회담에서 '내각제를 않겠다' 는 식의 정치적 흥정을 한 것처럼 청와대가 흘린데 대해 분개했다.

대전을 방문 중인 李총재는 28일 "진위 여부를 떠나 그 따위로 나오는 게 어딨나" 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안택수 (安澤秀) 대변인도 "야당총재를 음해.비난하는 비신사적 작태를 즉각 중단하라" 고 촉구했다.

발언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총재회담에서 나눴던 얘기를 대통령의 참모가 발설하는 것 자체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행태란 것이다.

지난해 11월 첫 총재회담 직후에도 당시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 "李총재가 김윤환 (金潤煥) 부총재를 선처해줄 것을 당부했다" 고 흘린 점을 지적하며 "여당의 꼼수정치" 라고 몰아세웠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이 시점에서 청와대가 그렇게 나온 것은 혹시 있을 지도 모를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제휴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李총재가 대통령제를 전제로 DJ와 정치적 묵계를 했을 가능성을 흘림으로써 자민련이 한눈 팔지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란 얘기다.

安대변인은 "의원총회 발언 어디에도 (李총재가) 내각제를 하겠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면서 "그런데도 李총재가 임기말 개헌엔 반대하고 연내 내각제 개헌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비난하고 나서는 국민회의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고 쏘아붙였다.

DJP의 내각제 약속을 정권연장을 위한 정략이라고 몰아붙인 李총재 자신이 내각제를 또다른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한 것처럼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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