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암 징검다리 건너기, 젊은 그녀의 똑똑한 선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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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가족력이 있는 그녀의 다음 걸음은 어디로 향할까. 유전성 암 발생 위험이 의심되는 사람은 젊을 때암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게 안전하다. [신인섭 기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노성훈 (외과) 교수에겐 위암에 걸린 19세 소녀를 떠나보낸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복통을 참으면서 입시를 준비했던 소녀는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암세포는 복막까지 전이돼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대학 캠퍼스의 꽃이 피기 전에 세상을 떴다.

40세 미만 여성 위암환자 많아

탤런트 고 장진영씨의 경우가 아니라도 꽤 많은 젊은이가 암 진단을 받는다. 관심을 끄는 것은 젊은 암환자는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1987년부터 2008년까지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절제술을 받은 여성 위암환자 4198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12.1%(508명)가 40세 미만의 젊은층이었다. 반면 남성의 경우엔 같은 기간에 수술을 받은 8366명 중 5.5%만이 40세 미만이었다.

젊은층 암을 우리나라 전체로 확대해 보자.

중앙암등록본부의 2005년 신규 등록된 남자 암환자 수는 모두 7만7566명. 이 중 20대가 875명, 30대는 2794명이었다. 20, 30대를 합한 숫자가 전체 암환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7% 수준. 이에 비해 여성은 12.5%를 차지했다. 이 수치는 암등록사업이 시작된 1999년 이후 매년 집계된 통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사에서 특히 젊은 여성의 비율이 높은 암은 위암·유방암·자궁경부암·갑상선암이었다. 유방암의 경우 2005년 기준으로 40세 미만 환자의 비율은 17.5%. 자궁경부암은 17%, 갑상선암은 27%였다.

국가암관리사업단 박은철 사업단장은 “이 같은 통계는 40세 이상으로 규정된 현행 국가암관리사업의 암 검진 시작 연령을 일부 여성 암에선 낮춰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환자가 나이 든 환자보다 생존율 낮아

문제는 젊은층 암은 병의 경과가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손병호 교수팀은 유방암 환자를 35세 미만(381명)군과 35∼50세(2319명)군으로 나눠 생존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나이 든 암환자군의 5년 생존율은 82.7%인데 비해 젊은 그룹은 69.9%로 낮았다. 또 암의 재발이 없는 무병생존율 역시 젊은 그룹(58.1%)이 나이 든 그룹(74.1%)에 비해 많이 낮았다.

가족력 있으면 유전자 검사, 정기검진 받아야

젊은층 암이 왜 여성에서 많은지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뚜렷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막연하게 여성에서 발암 유전자의 발현이 높고, 여성호르몬이 관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론만 할 뿐이다.

현재 여성은 물론 남성 젊은층의 암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나 대책은 뾰족하지 않다. 그나마 가족력 상담과 유전자 검사, 그리고 고위험군으로 판정받으면 정기검진을 앞당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손 교수는 “젊은 여성의 유방은 조직이 치밀해 진단도 어렵지만 암세포가 더 활발하고, 공격적인 특성이 있어 생존율이 낮다”고 말했다.

노성훈 교수 역시 “젊은층 암은 병의 경과에 영향을 미치는 암세포 분화도가 매우 나빠 림프절 전이 또는 복막 전이가 강하다”며 “암을 발견했을 때 이미 수술이 불가능한 사례가 노인층 암에 비해 훨씬 흔하다”고 말했다.

암 발병 의심환자 검진 보험 혜택 줘야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돼 병원을 찾은 김모(27·송파)씨. 내시경 진단 결과 위암으로 판정받아 위를 들어내는 절제술을 받았다. 그는 병원 측의 권고로 유전암 검사 클리닉을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 ‘가족성 위암’이었다. 위암 발생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교수는 “젊은이에게 발생하는 암 중 상당수가 유전적인 요인”이라며 “유방암의 5∼10%, 대장암의 5∼15%, 일부 갑상선암 등 유전성 내분비암, 신경세포종 등이 유전성 암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암 발생에 직접 관여하는 유전자도 있지만 염증에 민감하게 반응해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유전자도 있다. 이른바 염증유전자. 김 교수는 “간염을 일으키는 B형 바이러스나 위염의 원인인 헬리코박터균에 똑같이 노출돼도 염증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성 암 검사와 상담은 암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암환자로 판명된 사람의 유전자 검사는 건강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만, 아직 발병하지 않은 가족이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한국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진경 박사는 “암 발병 후 들어가는 치료비와 가족의 고통·불안을 생각한다면 암 발병 이전 가족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검사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방 차원에서 유전성이 의심되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고종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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