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권력과 풍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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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학에서 '풍자 (諷刺)' 기법은 본래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태도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그 속성은 '아이러니' 와 매우 비슷하지만 날카롭고 공격적인 의도를 지닌다는 점에서 풍자는 아이러니보다 한결 강도 (强度) 높게 대상의 약점을 폭로하고 규탄한다.

풍자의 기법은 지배계급을 비꼬고 비웃기 위해 발생했기 때문에 그 대상인 지배계급이 풍자문학을 싫어하고 그것이 대중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편의 풍자소설이 권력에 의해 철퇴를 맞은 적이 있었다.

바로 1965년의 '분지 (糞地) 사건' 이다.

남정현 (南廷賢) 이 쓴 이 소설의 주인공 홍만수는 홍길동의 재능과 정신을 이어받은 그의 10세 손이다.

미군에게 강간당한 어머니가 미쳐 죽고, 미군의 정부 (情婦) 노릇을 하는 누이가 밤마다 미군에게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한 만수가 마침 한국에 온 그 미군의 부인을 겁탈하자 미군은 대대적 병력을 투입해 그를 체포하려 하고, 만수는 홍길동의 정신으로 당당하게 이들과 맞선다는 줄거리다.

'분지' 는 글자 그대로 '똥의 땅' 이며, '똥같은 나라' 다.

이 소설이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 에 전재 (轉載) 되자 중앙정보부는 남정현을 즉각 구속기소했다.

이 재판은 결국 '징역.자격정지 각 6개월의 선고유예' 판결로 끝나거니와 당시 검사의 논고가 '인상적' 이다.

"…남한의 현실을 왜곡, 허위선전하며 빈민 대중에게 계급 및 반정부 의식을 고취케 하는 동시에 반미감정을 조성, 격화시켜 한.미 유대의 이간을 획책하고…. " '분지' 의경우가 보여주듯 예술에 있어 풍자의 기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경색된 사회일 수밖에 없다.

한데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도 한 편의 풍자소설이 권력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제목도 '똥' 이어서 우리의 '분지' 와 상당히 닮아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샤논 아마드가 쓴 이 소설은 말레이시아의 추악한 정치현실을 온갖 비어 (卑語) 와 욕설을 섞어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당국은 '조사' 한 뒤 모종의 조치를 내리겠다고 하는데, '분지' 의 경우도 '똥' 의 경우도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권력이 풍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 당연히 창작의 자유가 위축되는 현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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