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31>정주영과 문인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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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과 한국문학이 1983년 마산에서 개최한 39문인과 기업인과의 대화39에서 정주영 회장(맨 왼쪽)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정주영과 문인들

1970년대 막바지엔가 현대그룹이 100명가량의 문인을 울산에 초대한 일이 있었다. 명목은 2박3일 일정의 산업시찰이었지만, 정주영 회장이 문인들에게 자동차공장·조선소 등 ‘현대’의 위용을 보여 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한다는 비서실의 귀띔이었다. 둘째 날 저녁 그곳 영빈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정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어렸을 적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이광수의 『흙』을 읽으면서 자신도 꼭 작가가 되려고 마음먹었었다고 회고했다. “사업에 뛰어드느라 그 꿈은 일찍 접었지만, 어렸을 때 품었던 문학에 대한 동경 때문에 지금도 문인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문인들이 단체로 울산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울산의 현대조선소가 완공된 직후인 75년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원 60여 명이 산업시찰을 위해 포항을 거쳐 울산을 방문했을 때도 정주영 회장은 만사를 제쳐 놓고 여류 문인들을 반갑게 맞았다. 영빈관에 마련된 만찬회장에서 손소희 회장이 여류 문인 한 사람 한 사람씩 우스갯소리를 섞어 가며 소개를 하자 정주영은 수첩에 뭔가를 메모까지 해 가며 기억해 두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손소희가 박정희 시인 차례에 “문인극 할 때 술집 작부 역할을 아주 잘했던 시인”이라고 소개했을 때 정주영은 파안대소하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

문학이나 문인에 대한 정주영의 관심은 보통 이상이었다. 그룹 내 측근들에 따르면 널리 알려진 소설은 줄거리를 훤히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시인의 시를 암송해 들려준 적도 여러 차례였다는 것이다. 이따금 좋아하는 몇몇 문인을 초대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은 70년대 이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비교적 자주 만난 문인들은 구상·이병주·한운사·김주영, 그리고 모윤숙·김남조·정연희·김양식·김수현 등 여류 문인들이었다. 구상과는 인생의 문제, 신앙의 문제에 대해 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김수현은 정주영이 자서전을 낼 때 최종 감수의 역할을 맡는가 하면 정주영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정주영의 일평생 문학과 문인이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80년대 후반 그는 어떤 소설 때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일이 있었다. 실천문학사가 펴낸 백시종의 『돈 황제(皇帝)』라는 소설이었다. 누가 읽어도 현대그룹과 정주영 회장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한 재벌기업 회장의 불법과 비리에 의한 부정축재, 권력·언론과의 유착, 여자관계 따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주인공인 ‘왕 회장’과 문인들의 잦은 만남조차 ‘아부’ ‘용돈’ ‘공짜여행’ ‘쓰레기’ 따위의 구체적인 표현을 써 가며 양쪽 모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소설을 쓴 백시종이 10년간 현대그룹의 직원으로 재직했다는 점이었다.

책에서 작가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백시종은 ‘80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에 입사해 10년 동안 사보 제작을 담당하다가 89년 4월 그룹 통합홍보실 부장으로 승진발령을 받았으나 사흘 만에 부당 해고당했다’고 되어 있었다. 왜 부장으로 승진하자마자 해고됐는지, 왜 백시종이 그런 소설을 쓰게 됐는지 어느 쪽도 밝힌 바 없으므로 베일에 가려지고 말았지만 얼마 후 책이 자취를 감추면서 뒷말만 무성하게 남았다.

정주영이 문인들로 인해 서운했음 직한 일은 그로부터 몇 년 후 또 한 차례 있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92년이었다. 연초에 통일국민당 창당을 준비하면서 그는 문화예술인, 특히 문인들이 창당 발기에 많이 참여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152명의 창당 발기인 가운데 문인은 겨우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한운사처럼 서울대 문리대 동기동창인 김영삼의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창당 발기에 참여한 문인도 있었지만 권유를 받은 여러 문인은 ‘정치엔 관심이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

울산에서 문인들과 만났을 때 누군가 ‘이 만남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정주영은 ‘돈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가볍게 대답했던 것을 기자도 기억하고 있다. 약간의 농담기도 느껴졌지만, 자신을 만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돈’으로만 인식한다면 그 만남 자체의 순수성이 훼손된다는 사실을 정주영은 과연 알았을까 몰랐을까. 결국 그의 대선 출마는 ‘돈의 정치 참여’인 셈이었고, 그래서 문인들과의 관계도 ‘해피 엔드’일 수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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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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