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소녀가장 돕는 외국 조종사의 소리없는 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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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동생과 단둘이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미애 (13.서울강남구일원동.S중1) 양에겐 매달 21일 5만원이 입금된다.

넉달째 미애양 통장에 찍힌 송금자는 한 외국인. 미애양은 이 돈으로 남동생 (11) 의 학교 급식비를 내고 나머지는 구청에서 나오는 보조금 25만원에 보태 한달 생활을 꾸려간다.

미애가 사는 아파트엔 이처럼 외국인의 도움을 받는 나이 어린 가장이 4명 더 있다.

이들은 그러나 낯선 이름의 외국인이 왜 돈을 부쳐주는지 모른다.

통장을 만들어준 동사무소 언니로부터 "좋은 아저씨가 도와주기로 했다" 는 말만 들었다.

통장에 나타난 송금자는 '짐 이슨' .기자가 구청을 통해 확인한 결과 그는 항공사 기장으로 올 초부터 대학생을 포함해 7명의 청소년에게 5만원씩 모두 35만원을 몰래 보내고 있다.

캐나다 국적의 이슨 (45) 이 남모르는 선행을 하게된 것은 지난 설날 숙소인 르네상스서울호텔 직원 및 동료 기장들과 함께 강남구의 결식아동들에게 쌀과 생활비를 전달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지난해 10월 호주항공사에서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긴 뒤 한국의 어려운 이웃을 처음 발견한 그는 "도울 곳을 알아봐 달라" 며 호텔직원을 찾아갔다.

구청을 통해 미애양 등과 연결됐으나 구청측엔 "액수가 너무 적어 부끄러우니 출처를 감춰달라" 고 부탁했다.

동료 기장들과 기금을 모으며 어린이날의 불우아동돕기 행사를 준비 중인 그는 "한국 어린이가 예뻐서 마음이 움직였을 뿐" 이라고 겸손해 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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