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읽기] 폴란드서 통한 정책, 러시아선 왜 실패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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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생각의 함정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에코의 서재, 327쪽 1만3800원

# 1. 식료품점에서 과체중인 사람이 쇼핑 카트에 저지방 냉동식품, 다이어트 소다 등 저지방 식품을 가득 싣고 있다. 이 경우 과체중인 사람들이 주로 먹는다고 해서 다이어트 식품이 살을 찌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가.

# 2. 1990년대 폴란드의 시장경제 전환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미 하버대 교수 제프리 삭스는 똑같은 민영화 정책을 러시아에 도입했다. 그 결과 극소수 부자들의 배만 불리고 수 백만 노동자들은 빈곤해졌다. 어째서 ‘러시안 쇼크’라 불리는 이런 대실패가 일어났을까.

원제가 ‘실책:똑똑한 사람들이 잘못 된 결정을 내리는 이유’인 이 책에 나오는 사례다. 미 해군사관학교의 국가안보 전략 교수인 이 책의 지은이는 똑똑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이같은 판단 착오를 ‘인지 함정’ 탓이라 한다. 인지 함정은 그릇된 추론에서 비롯된 유연하지 못한 사고방식을 뜻하는데 여기엔 상당 부분 정서적 요인들이 작용한단다.

그는 인지함정의 원인으로 ▶나약하다는 인식을 줄까 두려워하는 ‘노출불안’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 여기는 ‘거울 이미지’ ▶변화하는 세계를 거부하는 ‘정태적 집착’ 등 7가지를 드는데 상당히 설득력 있다.

1998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상점 앞에 줄지어선 노동자들. 폴란드에서의 성공을 믿고 민영화 정책을 밀어붙인 바람에 이들은 시장경제 전환 후 더욱 빈곤해 졌다. [중앙포토]

이를 위해 동서고금의 중대한 역사적 실책을 보여 주는데 발명왕 에디슨, 베트남의 마지막 임금,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확대한 맥나마라 전 미 국방장관 등 ‘똑똑한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렇다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베트남전, 이라크 전 등 국가정책의 실패와 함께 남녀 간의 오해 등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례도 나오기 때문이다.

앞에 든 사례 중 첫 번째는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는 ‘원인 혼란’의 경우다. 두 번째 사례는 과거의 성공이 미래도 보증한다는 만병통치주의의 병폐를 보여준다. 정부를 불신하는 노동자들이 주식을 ‘진짜 돈’과 바꿔버리곤 하는 러시아의 특수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국영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인 탓에 러시아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인지함정의 해법으로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지 말 것, 자신의 해결책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제안한다. ‘처방’이 어느 정도 유효할지 모르나 책 자체는 흥미롭고 유익하다. 특히 정책결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필독서라 할 만하다.

단 번역이 거슬리는 대목이 더러 있으니 새겨 읽어야 한다. “보리스 옐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소비에트 연방지도자들이…”(92쪽)이나 “(미국)대통령은 직접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서 테헤란으로 여러 번 몰래 잠입하여 이란의 군부 요인들에게 쿠데타를 하도록 설득했다”(106쪽)처럼 엉뚱한 구절이 눈에 띄는 탓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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