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진회민 수도학원 한글반 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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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학원의 새벽 한글반에서 책 한권을 수개월만에 끝내고 '책걸이' 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40여명의 학생중 대부분은 60세를 넘긴 할머니.할아버지들. 읽고 쓰고도 싶었지만 한글을 몰라 그러지 못했던, 그 옛날 가슴에 사연을 묻었던 글들을 하나씩 들고 나와 읽기로 했습니다.

예배당에서 읽고 싶다던 성경 한 구절을 낭랑하게 읽으시는 할머니. 이민 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게 소원이었다는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보낸 첫 편지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한글을 깨쳤다는 기쁨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한결같았습니다.

70이 되신 이정순 할머니의 차례였습니다.

할머니는 누렇게 바랜 편지 한 장을 들고 앞에 섰습니다.

그러곤 쪼그라진 입술에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정순씨' 로 시작되는 연애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는 50여년전 우리 남편이 군대에 있을 때 7년간 제게 보내온 수십통의 편지중 하나입니다. 너무나 소중했지만 부끄러워 누구에게 읽어달라고도, 답장을 써달라고도 못했어요. 그게 얼마나 한이 되던지…. 하지만 며칠전 처음으로 내 손으로 우리 바깥어른께 연애 답장을 써봤지요. " 교실은 순간 요란한 박수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우리 새벽반은 오전 6시30분에 시작됩니다.

매일같이 그 시간에 새벽공기 마시며 등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제나 저보다 먼저 나와 예습하시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보면 지칠 겨를이 없습니다.

새 인생의 걸음마인 듯 '기역 니은' 을 끙끙대며 배우시는 분들. 이분들이 글을 통해 여는 새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제 삶이 의미롭습니다.

진회민(陳會旻.35.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수도학원 한글반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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