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우리말 바루기 33. 웃긴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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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터넷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봤다. '시실리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무섭고 웃긴 이야기'.

이처럼 요즘 '웃기는'을 써야 할 자리에 '웃긴'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웃기는'과 '웃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웃기다'는 '웃게 만들다'라는 뜻의 동사다. '웃기는'과 '웃긴'은 둘 다 '웃기다'에서 활용한 것이지만 시제가 서로 다르다.

다음 예를 보자.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인 후 일찍 재웠다." "어린애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쉽지 않다." 앞 문장의 '먹인'은 뒤에 오는 '후'라는 명사를 꾸미고, 뒤 문장의 '먹이는'은 '일'이라는 명사를 꾸민다. 이렇게 동사가 뒤의 명사 등을 꾸미는 관형형으로 될 때 어떤 어미가 오느냐에 따라 시제가 달라진다.

'는'이 오면 '밥을 먹는 사람' '빨리 가는 세월'에서 보듯 현재 시제를 표시한다. '은'이나 'ㄴ'을 쓰면 '밥을 먹은 사람' '빨리 간 세월'처럼 과거가 된다.

그러므로 과거 시제를 써 '웃긴 이야기'라고 하면 '과거에 누구를 웃게 만든 이야기'라는 의미가 된다. 현재 시제를 쓴 '웃기는 이야기'는 '내용이 우습거나 엉뚱해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예문이 말하려는 것은 영화의 성격과 내용이 '무섭고 우습다'라는 것이지 '과거에 누구를 웃게 한 영화'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웃긴'을 쓰면 어색하다. '웃기는 이야기' 또는 '우스운 이야기'라고 해야 의도한 대로 뜻이 전달된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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