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잠에서 깨어난 답사기록 '김지하 사상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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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0년대 후반, 감옥에 있는 김지하가 카톨릭에서 불교로 개종했단 소문이 돌았다. 알고보니 참선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이미 그 무렵 김지하는 근대 민중운동의 시작점이었던 갑오농민전쟁 배후의 미륵사상과 동학, 이후 해원 (解寃).상생 (相生) 의 증산사상을 훑어내려갔던 것이다. "

84년 겨울, '민중' 의 토착적 의미 규명을 위해 당시 '실천문학' 이 기획했던 '김지하 사상기행' 에 댓거리꾼이자 기록자로 동행했던 소설가 이문구씨의 말이다.

김지하가 누구인가.

70년대 통렬한 풍자로 유신의 심장을 겨눴던 시인이자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반체제인사? 90년대 분신 정국을 생명운동론으로 꾸짖고 이제는 두루마기차림으로 단군을 이야기하는 민족주의자? 실천문학사가 펴낸 '김지하 사상기행' (전2권.각9천원) 은 이같은 단절적 인식을 꿰뚫는 키워드야말로 '사상가 김지하' 라고 소개한다.

'…사상기행' 의 첫권은 바로 14년전 겨울 공주 - 부여 - 논산 - 익산 - 남원 - 모악산을 잇는 4박5일간 답사기록. 동학과 증산도의 흔적을 되짚는 이 기행에서 김지하는 자기 사상의 원석 (原石) 이라고 불릴만한 달변을 쏟아낸다.

때로는 강론으로, 때로는 동행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로 이어진 이 내용을 이문구씨의 리듬감 넘치는 문체는 한판 굿처럼 엮어내려간다.

이 기록은 본래 2회만이 지면에 연재됐다가 당시 '실천문학' 이 폐간처분을 받으면서 잊혀졌던 것. 실천문학사가 작년 여름 이사를 하면서 대학노트 10권 분량의 녹취 기록을 찾아낸 것이 14년 세월을 잇는 김지하사상 정리의 출발이 됐다.

책의 둘째권은 시인 황지우씨가 작년 11월 일산 자택에서 꼬박 10시간 동안 진행한 대담이 핵심. 김씨는 동학교도였던 선조의 내력, 감옥에서 참선 중 겪은 신비체험, 정신병원 입원 등 구체적인 개인사,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해박한 인용과 함께 자신의 사상의 내력을 털어놓는다.

급기야 황씨는 14년전 여로를 되밟아 동학.증산도 유적을 사진 40점에 담아왔다.

1주일간의 사진전 개막식을 겸한 출판기념회는 14일 오후6시 서울 인사동 화랑 '풀' 에서 열린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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