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높아만 가는 '철의 장막'…무차별 수입규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미국이 철강 수출국들을 향해 뽑아 든 무차별적인 규제의 칼날이 점점 날카로워 지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5일 한국, 일본, 대만 등 6개국 업체가 미국에 수출한 스테인리스 강선 (鋼線)에 대해 3~35%의 마진율을 판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일에는 일본, 프랑스 등 6개국산 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은 주요 대미 철강 수출국의 10개 품목에 대해 이미 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5개 품목에 대해서는 반덤핑 및 상계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미 하원은 지난달 16일 외국산 철강 수입을 97년 이전 3년간의 연평균 수입량 수준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상원 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법안대로라면 미국의 철강 수입은 지금보다 25% 줄어들게 된다.

특히 슈퍼 301조의 부활로 미국이 보복조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쥐게 돼 철강 수출국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수출국들의 대미 (對美) 수출은 최근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일본의 대미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51%나 줄었다. 일본은 올해 철강 수출이 지난해보다 약 2천3백50만t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도 지난 2월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대미 철강 수출을 97년 대비 70%이상 줄이기로 합의했다.

미 정부의 잇따른 철강 수입 규제 조치는 무엇보다 유에스 스틸.베들레헴 스틸 등 주요 업체들이 "외국산 철강 덤핑으로 미국 기업들이 죽어가고 있다" 고 제재를 요구하고 나선데 따른 것.

미 철강업체는 지난해 이런 내용의 의견 광고와 철강 수요 진작을 위한 캠페인에 4백만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미 철강업계의 해고자수는 1만명이며 3개 회사가 파산했다. 이 때문에 일자리의 위협을 느낀 철강 노조도 이에 가세했고, 표를 의식한 미 의원들도 철강 수입 규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 철강 업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최근의 가격 하락은 덤핑보다는 달러 강세에 따른 요인이 더 크다는 것. 또 미 업체들이 자신들의 실책을 외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미 업체들은 지난 80년대부터 중간재 부문을 대폭 축소하고 고가품과 완제품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했는데 경제위기로 아시아 지역 수요가 급감하면서 경영난에 처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최근 '숨겨진 무역 비밀' 이란 기사를 통해 철강 반덤핑 캠페인의 선봉에 선 베들레헴 스틸이 전체 외국산 수입 철강의 25%를 소비하는 등 미 철강업체들이 오히려 값싼 수입 철강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 지난해 13개 미 주요 철강업체 중 11개사가 이익을 냈다. 일본과 유럽연합 (EU) 이 세계무역기구 (WTO) 제소를 불사하겠다며 미국과 한판 싸움을 벼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