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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영화제'서 만날 세 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대다수 고전영화들은 남근 중심적인 언어로 고착돼 있다. 이 영화들에서 남성은 능동적이고 바라보는 '주체' 인 반면 여성은 수동적이며 남성의 욕망의 '대상' 이다. " 대중문화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현되는 여성상을 바라보는 페미니스트들의 시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리의 인식의 지평이 남성중심의 시선 (male gaze)에 결박돼 있는데 대한 비판적 발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반쪽 시선이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을 남성의 잣대로 평가하게 한다는 점에서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여성의 시선' (female gaze)에 대한 관심이다. 여성 혹은 남성, 여성과 남성의 관계, 여성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오는 16~24일 열리는 서울여성영화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선보일 영화들엔 남성적 시선에 대한 저항 즉, '뒤집어보기' 의 도전적 시도가 담겨 있다.

특히 '바비 인형의 제국' '조디 포스터 이야기' , 그리고 '팝의 여전사' 등 세 편의 다큐멘터리는 이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총 52편의 상영작 가운데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문화 영역에 초점을 맞춰 눈길을 끈다.

미국의 툴라 아셀라니스 감독의 다큐 '바비인형의 제국' (57분) 은 59년 미국에서 첫 등장한 바비의 40년 역사를 추적한다.

60년대에 간호사였던 바비가 록 가수 등을 거쳐 90년대 대통령으로 변신하기까지 바비의 다양한 이력에 비친 미국 현대사의 물결을 읽어낸다.

인간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바비의 '완벽한 몸' 은 성형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 다이어트를 하는 현대여성의 '우상' 이다. 바비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환상 그 자체인 동시에 육체에 대한 강박증으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매개다. 감독은 또 바비가 입는 '공주같은' 화려한 의상에는 소비에 대한 현대인들의 열망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영국감독 프라티바 파마의 '조디 포스터 이야기' (Jodie:An Icon) 는 '조디 포스터는 정말 레즈비언인가' 하는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조디 포스터의 출연작들을 중심으로 그녀가 가진 소년의 이미지, 성적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강인한 여성상을 구현한 이미지에 담긴 의미들을 탐구한다. 조디를 가리켜 '레즈비언' 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문화비평가들은 조디가 연약하고 희생당하는 여성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피고인' 에서 함께 공연한 여배우 켈리 맥길리스와의 염문과 '양들의 침묵' 등에서 그녀가 여자동료와 주고 받은 눈빛을 통해 조디 포스터의 레즈비어니즘을 읽어낸다.

이들에게 그녀가 진짜 레즈비언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성들을 열광시키는 그녀의 중성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성' 이 갖는 의미에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한편 '팝의 여전사' (The Righteous Babes) 는 대중음악에서 여성주의의 기호들을 찾아낸 다큐멘터리다. 90년대 들어 활발하게 활동중인 여성 아티스트들이 현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라티바 파마 감독은 이제 여성 아티스트들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읊조리듯 부르지 않고 도전적이고 성적인 복수의 내용을 폭발하듯 표현해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발적인 이미지를 표출해온 마돈나 역시 기존의 여성상을 뛰어넘어 여성의 욕망과 에너지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여성학자 카밀라 퍼그리아는 "교과서에서 끌어내 온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읽고 매달려야 했던 이론이자 논쟁이었던 페미니즘이 이제 영화 등을 통해 대중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고 설명한다. 02 - 3476 - 0663, 3477 - 0346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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