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e칼럼

파노라마처럼 지나간 발렌시아 Panoramica GC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바르셀로나 공항 근처에 유명한 골프장이 있다고 하여 주소를 들고 찾아갔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네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오는데 골프장은 보이지 않았다. 골프장 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군부대로 바뀐 것인지, 그린과 페어웨이가 잡초에 묻혀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에게 물어보아도 근처에 골프장은 없다는 말 뿐. 결국 바르셀로나 공항 옆의 거친 파도와 바람에 머리만 식히고 돌아왔다. 그라나다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까지는 거의 900Km의 거리였다. 하루 종일 쉼 없이 달려가는 것은 무리였기에 중간에 발렌시아를 기착지로 골프장을 하나 더 찾아보기로 했다.

어찌 보면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까지의 네 시간 길은 별로 볼 것이 없는 지루한 길이기도 했다. 다행히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 중간 지점에 스페인 10 대 골프장 중의 하나인 Panoramica Golf Club이 있었다.

Panoramica GC는 마스터즈를 두 번이나 석권한 독일인 프로 Bernhard Langer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7,031yd의 전장을 자랑하는 챔피언십 코스. 80ha의 코스는 지중해성 기후로 1년 내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기상 컨디션을 자랑한다. 그래서 2005년부터 스페인 여자 오픈을 개최하는 등 각종 국제 투어를 개최하며 지중해 골프장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1995년 오픈하여 이제는 수목들이 안착한 골프장. 거의 100년은 되었음직한 올리브나무들이 코스에 몽글몽글 자리 잡았고 쥐엄나무라는 다소 생소한 나무들을 처음 대면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언듈레이션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형 골프장, 그린은 크고 8개의 호수가 7개 홀에서 강력한 워터해저드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히 파3 5번 홀은 133m의 아일랜드 그린이 인상적이었다. 502m의 11번 홀은 그린 앞에 거대한 호수가 자리잡고 있어 최소한 200미터의 세컨샷을 날려야 그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골프장은 잘 관리되어 있었고, 드라이버 풀스윙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챔피언십 코스가 그동안 찌뿌듯했던 몸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이후 발렌시아에서 발생하는 충격적인 사고 때문인지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는 기억 외에 골프장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발렌시아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스페인 제 3의 도시 발렌시아. 지중해와 맞닿아 그 유명한 발렌시아 오렌지와 스페인 굴지의 쌀 생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쌀 요리인 스페인 전통 음식 빠에야의 종류가 풍부한 곳. 눈부신 지중해에 올리브와 오렌지 나무 그늘이 있고 빠에야가 맛있는 한가로운 도시... 발렌시아는 객관적으로는 그런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발렌시아는 우리의 남은 여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충격의 도시가 되었다.

다음 날 발렌시아 시내를 둘러보고 그라나다로 출발하려면 시간상 시내 한복판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대여섯 곳의 호텔에 들렀지만 빈 방이 없었다. 다음날 무슨 축구경기가 있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외곽으로 나가려다 보니 골목 어귀에 낡고 허름한 호스텔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방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다락방에 그나마 흡연실이었다. 냄새가 진드기처럼 폐부를 파고 들었다. 그 옛날 탑승 자체로도 멀미가 나던 시외버스 냄새가 연상되었다. 침대는 스프링이 늘어난 듯 푹푹 꺼지고 영어는 한 마디도 안통하고... 손짓발짓으로 주차장을 물어 보니 그냥 큰 길 광장에 세우면 된다고 했다. 아침 9시 전에는 무료라고... 웬일인지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주요한 짐을 챙겨 호스텔로 갔다.

다행히 근처에 식당이 있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스페인에서는 대략 초저녁이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레스토랑은 거의 밤샘 분위기를 연출했다. 치즈나 샐러드, 하몽이나 홍합, 소시지, 라이스, 누들 등 스페인 음식은 경험으로 볼 때 유럽지역에서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다. 매콤한 맛과 적당한 간이 익숙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차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잠시 시내 투어를 나서면서 무거운 가방을 차에 두고 가기로 했다. 대성당에 다녀오는 데 30분이면 족하고 시청 앞 공용 주차장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번잡한 곳이라 섣불리 남의 차에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청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도처에 경찰이 쫙 깔려 있었다. 주차티켓을 차에 꽂아 놓고 안심하고 대성당 구경에 나섰다.

하지만 30분 후, 차에 도착하니 어인 일인지 주변이 산만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닥에 유리 조각이 널려 있었다. 차를 살펴보다가 기겁을 했다. 운전석 뒷자석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차안은 난장판이었다. 얼핏 보니 영양가 없는 옷가지들이 들어있는 큰 가방은 있고 배낭 두 개와 중형 손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머리 속에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세 가방 안에는 여권, 비자, 항공권, 비상금, 카드, 신분증, 수첩, 노트북 2대, 백업메모리, 휴대폰, 카메라, 각종 기기별 충전기, 코드, 여행 수기노트, 각국의 기념품, 책자... 분실한 물건의 목록을 상기할수록 마음만 아팠다. 특히 복원이 불가능한 여행 사진이 담긴 하드디스크와 여행기를 적어 놓은 수기노트가 사라진 것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다행히 2주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3차 백업을 받아 조수석 의자 아래에 깔고 다니던 메모리가 유일하게 우리 여행의 증거로 남았다.

어떤, 큰 일이 생기기 전에는 늘 조짐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쿤데라의 표현의 빌자면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사건이나 일들이 충첩되어 일어난다. 우리에게도 그랬다.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골프장은 문을 닫았고, 예정에 없었던 Panoramica GC에서 필요 이상 시간을 낭비했고, 늦게 도착한 발렌시아 시내의 호텔 다섯 군데는 꽉 차 있었고, 도심의 허름한 호스텔에 마침 방이 딱 하나 있었고, 게라지가 있는 데도 길거리에 주차를 했고, 다음 날 아침에도 굳이 아침 식사로 빠에야를 먹자며 시간을 지체했고, 늘 지고 다니던 가방을 차에 두고 움직였고, 생전 듣지 않던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성당 투어를 했고....

이번 도난 사건은 사실상 그동안 무모하게 앞만 보고 거침없이 달려왔던 우리의 세속적 삶, 여덟 달 여의 유럽 여행에 시련기가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처럼, 그날은 우리 여행의 수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목요일’이었던 것이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