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인구 절반 차지한 거대 통합시 나올 경우 반쪽짜리 도지사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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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군 자율 통합을 지켜보는 시·도지사들은 불안하다.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긴급 시·도지사협의회에서 광역단체장들의 위기감과 불만이 표출됐다.

본지가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6개 시·도지사 가운데 명백하게 ‘반대’ 입장을 밝힌 단체장은 없다. 허남식 부산시장처럼 “입장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원칙적으로 찬성’이라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시·군이 통합될 때 생기는 행정 효율과 주민 편의 등 명분에 밀려 시·도지사들이 분명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광역단체장이 통합에 부정적인 것은 시·도와 맞먹을 정도의 통합시가 등장할 가능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천안·아산을 합치면 인구가 81만 명으로 충남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할 경우 인구가 79만 명으로 충북 인구(155만 명)의 절반을 차지한다. 인구나 면적이 반 토막 나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충남도 손권배 기획계장은 “통합 지역은 인구가 너무 많고 그렇지 않은 곳은 인구가 너무 적어 자치단체 간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경기도의 경우도 심각하다. 통합 거론 지역이 모두 합쳐지면 대도시가 4개 생긴다. 특히 성남·광주·하남 등 3개 시가 통합되면 인구는 134만 명이 되고 면적은 서울시(605㎢)보다 넓다. 입주가 진행 중인 판교신도시와 하남 보금자리 사업이 끝나면 140만 명에 육박하게 된다. 수원·화성·오산이 합쳐지면 인구 173만 명에 면적은 852㎢에 달한다.

20개 시·군이 있는 경남은 창원·마산·진해시와 함안군 등 4개 시·군이 통합돼 떨어져 나가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4개 시·군이 경남 전체 경제의 5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경남발전연구원에 따르면 4개 시·군 인구는 115만 명으로 경남(323만 명)의 36%를 차지한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20조728억원으로 경남 전체(50조7000억원)의 40%에 달한다. 인구에서 울산시(111만여 명), GRDP에서 대전시(16조8000여억원)를 능가하는 대도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통합시의 인구가 100만 명 이상 되면 부시장 한 명을 더 두도록 하고, 지역개발채권 발행 권한 등 시·도가 갖고 있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넘겨줄 방침이다. 자칫 반쪽짜리 시·도가 될 상황이다. 이에 대해 강병규 행정안전부 2차관은 “통합시의 규모가 커지더라도 기초단체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광역시의 지위를 부여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시·도지사가 시·군 통합 논의를 경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국을 60~70개의 통합 행정 단위로 바꾸는 행정구역 개편의 전 단계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허태열(부산 북-강서을) 의원은 여야 의원 62명의 서명을 받아 6월 말 ‘지방행정체계 개편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중앙정부-광역시·도-시·군·구로 이어지는 지방행정 계층이 중앙정부-시·군·구로 바뀌게 된다. 광역자치단체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시·군 통합 논의가 전혀 없는 곳의 시·도지사까지 한목소리로 통합 움직임에 우려를 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도지사들은 60~70개로 개편하면 중앙집권이 강화돼 지역 분권에 역행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세계적으로 행정구역은 광역화하는 추세인데 현재보다 작은 60∼70개로 개편하면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이 뒤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우·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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