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선생님] 필리핀 현지와 화상 영어수업 산골 아이들에 희망 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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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 학교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한 이 학교에 새로운 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문경시와 문경시교육청에서 주최한 각종 과학·수학경시대회와 논술대회에서 16명이 수상했다. 그 중심에는 학생들을 향한 한 교사의 사랑이 있었다. 지난해 부임한 박미애(48·여) 교사. 그는 전교생의 적성을 파악한 특성화 교육으로 희망을 불어넣었다.

박미애 선생님(中)의 등하교 인사는 “안녕하세요”아닌 포옹이다. 선생님의 웃음 앞에 아이들은 마음을 열었다. [황정옥 기자]

주머니 털어 영어책 100여 권 구입

“지난해 3월 처음 부임했을 땐 학교에 영어교사도, 영어수업 관련 기자재도 없었죠. 5~6학년 학생 상당수가 알파벳도 몰랐으니까요.” 박 교사는 영어교육에 필요한 자료부터 수집했다. 유치원부터 초·중학교, 사설학원까지 경북의 유명 영어교육 시설을 샅샅이 훑었다. 사비를 털어 100여 권의 영어책도 구입했다.

지난해 7월 문경시에 ‘영어체험교실 운영방안’ 계획서를 제출해 45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6개월 동안 전자칠판과 각종 영어책, 교구를 갖춘 영어체험학습실을 꾸몄다. 이 덕분에 올해부터 4~6학년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필리핀 현지와 연결해 화상 영어수업을 한다. 4학년 권혜은(10)양은 “영어수업에 재미가 붙어 영어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며 “올 10월 영어 말하기 대회에도 출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방과 후 원어민 수업도 개설했다. “학교 형편이 넉넉지 않아 원어민 교사를 구할 수 없는 게 고민이었죠. 궁리 끝에 다문화가정을 꾸린 필리핀 여성들을 찾아 다녔어요.” 박 교사는 올해 초 대학을 나온 필리핀 여성 2명을 설득해 정규수업이 끝난 후 1~3학년, 4~6학년으로 반을 나눠 매일 2시간씩 특별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아이들 데려다 재워

박 교사 책상 위의 작은 화병은 매일 아침 학생들이 꺾어 온 들꽃으로 가득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얼마 안 있어 떠날 선생님’이라는 생각에 학생들이 거리를 뒀었다.

“초임지가 벽지(포항 비학초)였던 탓에 산골 마을 학생들에게 유난히 정이 많이 갔어요. 때묻지 않은 학생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었죠.” 박 교사는 이번까지 네 번째 벽지 학교를 자원했다.

박 교사는 등·하교 인사를 “안녕하세요” 대신 ‘포옹’으로 바꿨다. 한 달에 한 번씩 반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 재웠다. 주변 유적지와 박물관 체험학습도 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도 선물했다. 저녁식사는 피자를 주문해 나눠 먹었다. 이 모든 비용은 박 교사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런 노력 끝에 학생들이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어떤 아이라도 한가지씩은 잘해요”

한 학년이라야 5명뿐인 이 학교 학생들이 올해 각종 대회에서 22차례나 입상한 것은 맞춤형 교육 때문이다. 4학년 담임이자 연구담당인 박 교사는 학기 초부터 학생 하나하나를 면담하고, 개개인의 특성을 찾아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한 분야에는 소질이 있다”는 게 그의 교육철학이다. 윤시라(10)양은 “방과 후에 따로 하루 한 시간씩 글짓기 수업을 받았다”며 “올해 문경시 논술대회에서 은상을 탄 것은 선생님 덕분”이라고 감사해했다. 김주흥 교무부장은 “교사가 학교와 학생들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깨닫게 한 참스승”이라고 박 교사를 평했다.

박 교사의 열의에 동료들도 뜻을 같이했다. 교사들 스스로 연구수업을 진행하고 수업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런 노력으로 당포초등학교는 지난해 문경시 17개 초등학교 중 자율장학수업 최우수교로 선정됐다. 박 교사는 “열악한 교육여건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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