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코소보'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나토의 유고 공습을 놓고 미국 내에선 탈냉전시대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

얼마전 기자와의 대화에서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라크 공습엔 유보적이었지만 이번 코소보 공습은 지지한다고 말했다.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비인륜적 행위는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자체 역량으로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는 주권국가의 의지를 힘으로 포기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주민을 굶기는 북한정권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는 있을지라도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해서 힘으로 다스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지상군 투입문제도 핫 이슈이나 결론을 내리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의 최첨단 장비가 동원됐지만 공습의 피해자는 결국 주민이므로 보스니아마냥 유엔 평화유지군의 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지상군 투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논의야 어찌됐든 연일 신문과 TV를 통해 보도되는 코소보사태를 지켜보노라면 자연스레 우리의 남북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그동안 벌어졌던 일련의 평화협상, 유엔안보리의 논의, 중국 및 러시아의 반발, 난민에 대한 국제구호단체들의 지원 등은 한반도사태가 삐걱거리면 우리에게도 닥쳐올 수 있는 상황들이다.

물론 추호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이긴 하다.

남북관계의 장래를 논하는 서방국들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의 대량난민을 우려해왔고 유엔 평화유지군 투입 시나리오까지 생각해놓고 있다.

세계대전의 시발점을 제공했던 발칸반도, 질긴 세르비아군의 반격,가공할 방공망 역시 먼나라 일 같지않다.

게다가 밀로셰비치의 피해의식 역시 북한지도부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장면은 난민들의 표정에 역력한 허탈감과 무기력감이다.

북한 지도부는 코소보사태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길정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