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타일·애자 … 별 것 아닌 것들 모이니 별난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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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야마무라 유키노리(오른쪽에서 두번째)는 한국과 일본 간 역사의 격랑을 기와지붕으로 표현한 ‘지붕에 소원을 담아서’를 내놨다. 관람객은 기와 위에 소원을 적을 수 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제공]


장마에 떠내려 왔을까 싶게 덜렁 기와지붕만 남았다. 올려다만 보던 지붕을 눈 아래 보니 새삼스럽다. 감히 기와지붕을 싹둑 베어 바닥에 내려놓은 이는 일본 도예가 야마무라 유키노리(37)다. 일본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온 그는 “두 나라가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동시에 역사의 격랑을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4일 오전 경남 김해시 송정리 김해도예촌 안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아키텍처럴 세라믹 나우 & 뉴(Architectural Ceramic Now & new)-예술, 디자인 그리고 도시’전 개막식에 앞선 작품 설명회에서 일본 작가는 양국의 아픈 과거를 상기시켰다. 그는 경주를 돌아다니다가 절에서 한국인들이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적어 기와를 시주하는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와는 집을 보호하는 외벽이면서 복을 빌어주는 매개물이다. 건축도자(클레이아크)는 이처럼 현실과 희망, 실용과 예술을 아우르면서 인류가 가장 오래 품어온 미술 양식이다.

요하네스 파이퍼 작 ‘삼각분할-에너지 장’.

“뭐라구요? 애자?” 애자는 여자 이름이면서 곧 개봉할 영화 제목 아닌가. 독일 작가 요하네스 파이퍼(55)가 자기 작품 앞에서 ‘애자’라고 말하자 통역원이 잠시 주춤했다. 여기서 애자(礙子)는 전선을 매기 위해 쓰는 사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절연 기구를 가리킨다. 건축도자가들 사이에서 그 잘록한 모양새나 다양한 쓰임새로 사랑받는 소재다. 파이퍼는 이 실용품에 형광 물질을 입혀 어둠 속에 삼각 형태로 설치해 보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사람이 움직이면 센서가 작동해 동작의 여운이 빛으로 남는다. ‘삼각 분할-에너지 장(場)’은 인간이 살아가며 뿜어내는 역동성과 전기를 연결짓는다.

2006년 3월 개관한 뒤 한국에 낯선 건축도자를 널리 알리는 데 힘써온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관장 임미선)은 이제 건축도자를 우리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새 목표로 내세웠다.

사진 합성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작가 이중근(37)씨는 만화경처럼 보이는 반복 패턴을 타일로 제작해 건축도자의 다량 생산성을 시험했다. 유머와 해학을 지닌 그의 작품이 마루나 화장실을 장식한다면 벽지나 밋밋한 타일에 싫증난 사람들로서는 상상력과 개성 넘치는 집안 꾸미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 된다.

올해 전시에서 눈길을 끈 대목도 이렇게 건축도자와 실제 집짓기에 쓰이고 있는 재료의 결합이다. 분청도자 기법을 건축자재로 개발하고 있는 한국민예사(대표 오세양)의 ‘토카(Toka)’ 시리즈는 전통의 전승이란 점 이외에도 환경친화성 자재로 관람객들 관심을 모았다. 습도조절기능과 전자파 유해 수맥파 차단, 항균효과, 방음성 등 현대 주택이 원하는 여러 장점을 지녀 개발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임미선 관장은 “아름답고 건강하며 편리하고 경제적인, 그러면서도 지속가능한 건축도자를 널리 개발하고 소개하는 일을 우리 미술관의 임무로 알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해(경남)=정재숙 기자

▶아키텍처럴 세라믹 나무 & 뉴-예술, 디자인 그리고 도시 전=2009년 9월 5일~2010년 3월 7일 경남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 358번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055-340-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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