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강서구등촌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용자 (朴龍子.40.여) 씨는 지난 22일 퇴근길에 인근 4단지에 사는 사할린동포 權복남 (83) 할머니를 찾았다.
지난달초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부쩍 말이 없어진 할머니.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 되뇌는 할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朴씨는 지난해 8월부터 1주일에 3~4번씩 權할머니 집을 방문해 밀린 빨래며 잔심부름, 밑반찬 준비까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손발이 돼왔다.
이젠 문밖까지 나와 朴씨를 맞아주는 할머니를 스스럼없이 '어머니' 라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權할머니 부부는 지난 97년말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40여명의 고령 동포들과 함께 영구귀국, 꿈에 그리던 고국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생활고와 외로움뿐. 지난해 8월 직장을 잃은 뒤 공공근로에 나선 朴씨에게 맡겨진 일은 權할머니와 같은 노인들을 돕는 일이었다.
결혼도 미룬 채 칠순 노모와 단둘이 살아온 朴씨에게 이들 부부의 외로운 '고향살이' 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병 간호와 할머니의 잔심부름까지 굳은 일을 마다 않고 효부 (孝婦)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직장을 잡아 공공근로가 끝난 뒤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할머니 부부를 떠날 수 없었던 朴씨는 올해부터 등촌4사회복지관에 자원봉사자를 자청, 친부모처럼 극진히 돌봐왔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웃음이 눈에 선하다는 朴씨는 "할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지킬 겁니다. 할머니를 끝까지 돌봐드려야죠" 라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