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국내 영세 자영업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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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송파1동 위너스 치킨집 주인 배성웅씨가 배달을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배씨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배달을 다닌다. [안성식 기자]

#1. 서울 송파1동 방이사거리에 있는 43㎡(약 13평) 규모의 치킨 가게. 외환위기 때 중소기업에서 명예퇴직한 배성웅(44)씨가 부인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재취업 자리를 찾지 못한 그는 노점상을 하거나, 학원차량 운전도 했다. 친구의 분식집에서 일을 도우며 장사를 배운 그는 2005년 여름 지금의 가게를 열었다.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빚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는 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 등으로 굴곡이 있었지만 밥은 먹고살 만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사정이 확 달라졌다.

“사람들이 돈을 안 써요. 일주일에 세 번씩 오던 동네 단골도 2주에 한 번밖에 안 오더군요.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잔 간단히 마시는 정도의 지출도 아끼는 것 같았습니다.”

한때 가게를 처분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올 사람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제값을 받을 수도 없었다. 대안이 없어 장사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궁리 끝에 배씨는 지난 5월 치킨집을 접고 오븐구이 방식의 치킨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이 됐다. 홍보에 공을 들이고 배달도 열심히 한 결과 예전에 비해 매출이 두 배가량 올랐다. 그가 전하는 길거리 경기는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인 상태’다.

“올여름부터 조금은 살아난 것 같다. 하지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아직은 힘들다.”

#2. 충남 아산의 한 선술집 체인점을 운영하는 조동숙(33·여)씨도 금융위기 1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강원도 춘천에 살던 그는 지난해 2월 공단지역이라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듣고 아산에 호프집을 차렸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36㎡(11평) 점포를 내는 데 3000만원이 들었다. 노래방 시설도 갖춰 개점 초기엔 돈벌이가 쏠쏠했다.

“술집과 식당이 밀집해 있는데 남성 손님이 많아 외환위기 때도 끄떡없었다는 곳이에요. 그런데 지난해 가을 이후로는 하루 한 테이블이 차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결국 장사를 할수록 적자가 커졌다. 생활이 빠듯해진 그는 친척의 도움으로 8000만원을 투자해 지난 2월 업종을 바꿨다. 가게 옆의 점포를 터 82㎡(25평) 규모로 넓히고 어묵과 일본식 사케가 주 메뉴인 가게를 차렸다. 불경기에 모험을 한 것이다. 조씨는 “매상이 상당히 늘어 다행”이라며 “경기가 좀 나아지는 건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와 조씨는 이구동성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안 좋다’는 말을 한다. 자신들뿐 아니라 주변 상가도 마찬가지라 한다. 배씨는 “아는 상인들과 만나면 ‘올해 상반기처럼 장사가 안되는 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로 위축된 실물경기가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소비가 줄어 이들의 장사가 잘 안되기도 하지만, 퇴직자들이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바람에 시장이 포화상태가 된 영향도 크다. 실제 소규모 창업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 사이에선 ‘58년 개띠 대란’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만 50세를 기점으로 우수수 직장을 그만둔 퇴직자들이 대거 자영업자로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위기에 따른 명퇴 바람의 후폭풍이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다 퇴직한 후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해 창업을 계획 중인 최모(47)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판매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장사되는 업종을 찾기 어려워 포기했다”며 “요즘은 외식업을 알아보는데 돈은 넉넉지 않고 전망도 불투명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금융위기 이후 극도의 침체에 빠졌던 창업 시장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실물 경제가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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