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창당 초부터 나를 몰아내려 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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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12면

총리 입각 문제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빚은 심대평 의원이 선진당 탈당 이유를 설명하다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기 위해 안경을 벗고 있다. 그가 “무소속이 됐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개인의 역량을 모두 쏟겠다”고 다짐할 때 그의 눈에는 살짝 이슬이 비쳤다. 신동연 기자

지난달 30일 자유선진당 대표직을 버리고 탈당한 심대평 의원. 그는 자신의 총리 입각을 무산시킨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를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뱉었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상당히 큰 듯싶었다. 기자와 만난 그는 “참는 게 충청인의 스타일이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말을 좀 해야겠다”고 했다. “요즘엔 설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라며 “내가 (탈당의) 결단을 내린 건 (이 총재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재가) 내 자존심과 인격을 아주 모독하는 수준의 예우를 하는 당에 도저히 몸담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대전 가는 길, 서울역서 만난 심대평 전 대표

‘총리의 꿈이 좌절된 게 탈당의 동기냐’는 질문에 심 의원은 다소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더러는 그렇게 오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영달을 꾀하려 했다면 (총리직을 받기 위해) 벌써 탈당했을 것”이라고 대꾸했다.
이 총재는 1일 당5역회의에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총리를 하려는 인물은 (총리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그걸 심 의원을 겨냥한 야유로 해석했다. 심 의원은 “이 총재가 그런 말을 했다는 보도를 봤는데 참으로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불쾌해했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심 의원이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심 의원은 “진정성이 없는 립서비스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심 의원과 인터뷰는 2일 레스토랑 ‘서울역 그릴’에서 이뤄졌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대전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충청) 지역을 돌면서 이번 일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며 “누가 옳은지는 지역 주민이 판가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입장을 밝힌 만큼 심 의원과 나란히 신문에 실리는 모양새의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음은 심 의원과의 일문일답.

-이 총재에게 실망했다는데 그 이유는.
“2007년 이 총재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해 도운 건 아니다. 충청도의 정치세력이 좀 더 크게 결집해 충청의 힘으로 나라를 바꿔 보겠다는 신념 때문에 이 총재를 도운 것이다. 그런데 창당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다. 창당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총재 세력이 비상대책위(비대위)를 만들어 심대평을 몰아내려 했다.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대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참았다. 그러나 신뢰는 이미 그때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청와대가 나를 총리로 쓰고 싶다고 했다 한다. 그때 이 총재는 나와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그런 제의는 없던 걸로 해 달라’고 말했다 한다. 내가 당 대표이고, 내가 총리로 가는 건 당 운영과도 관계가 있는 만큼 당연히 의논해야 했다. 당시 독선적인 이 총재와 당을 같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충청도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참았다. 이번에 또 한번 독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총재의 당 운영이 독선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예를 들 수 있나.
“당에서는 총재와 대변인이 매일 번갈아 가면서 논평을 낸다. 총재가 날마다 언론에 나오는 것은 당의 누구도 믿지 못해 그러는 것이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당이 무너진다’고 하는 생각이 강한 분이다. 당직자가 비록 모자라더라도 각자에게 역할을 주고, 그걸 종합해 당이 변화하도록 힘써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이 총재는)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바로 반박하거나 뒤집는다. 그런 위상의 추락을 지속적으로 당해 봐라. 당 대표라도 아무런 역할도 못 하게 된다.”

-당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시정하려고 노력했어야 하지 않나.
“지난해 나에 대한 총리직 제의를 총재가 없었던 걸로 하라고 했을 때 나는 40여 일간 당무를 보는 걸 거부했다. 그랬더니 총재가 당의 운영을 바꾸고, 대표의 역할은 어떻게 한다는 등 별 얘기를 다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 총재는 이번에 현 정권과 정책 연대가 이뤄지면 심 의원을 총리로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정책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런 예를 들었다. ‘선진당은 4대 강 정비를 반대한다. 그런데 당 대표로 있던 사람이 당적을 유지한 채 총리로 가면 4대 강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할 것 아니냐. 그럴 때 선진당의 정체성은 뭐가 되겠나’. 이 총재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선진당이 지금 창조한국당과 연대하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법과 관련해 선진당은 찬성이고, 창조한국당은 반대하면서 민주당과 함께하고 있다. 내가 총리로 간다고 해서 선진당이 4대 강 정비를 반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야당 지위를 엄연히 유지하는데 왜 반대하지 못하나. 오히려 (여권과) 연대와 공조를 하면 반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 총재가 당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는데 그것 참 웃기는 얘기다. 당리당략을 위한 이해타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총재가 심 의원의 총리 입각 문제와 관련해 세종시 원안 추진 등의 조건을 달았는데.
“나를 흥정 대상으로 삼았으나 나는 ‘조건부 총리’ ‘충청권 총리’라는 말을 싫어 한다. 이 총재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하려고 했던 분이다. 그런 분이라면 당에는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국가가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게끔 도우려는 태도를 취했어야 한다. ‘심대평이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면 데려가라. 그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우리 당이 돕겠다’고 했어야 했다. 나 같으면 그렇게 했겠다.”

-선진당과 민주당에선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공작 차원에서 심 의원을 빼가려 했다고 비난한다.
“이 총재 당신이 나에 대한 총리 제의를 청와대로부터 받은 다음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고 조건에 맞지 않아 나를 못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치공작이란 말을 할 수 있나.”

-이 총재는 심 의원의 복귀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었나.
“없었다.”

-적절한 시기에 한나라당에 들어가 다시 한번 총리직을 모색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가정에 대해 말할 순 없다. 현재로선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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