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가 보여주는 질감, 어찌 이리 카메라마다 다른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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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08면

디지털카메라와 폰카메라가 1인 1카메라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사진에 깊이 빠져든 이들은 기계식 카메라의 원리를 가져온 DSRL이나, 차라리 골동 카메라에 열광한다. 그 카메라나 그 렌즈가 아니라면 표현할 수 없을 듯한 단 한 컷의 이미지를 던져주는 것은 아날로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 김종세(58) 관장의 수집벽은 그런 아날로그의 개성에 빠져들면서 시작됐다.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 김종세 한국카메라박물관장

“제대 후 제 돈으로 처음 카메라를 산 게 1976년입니다. 아사히 펜탁스 K2를 구입해 취미 삼아 열심히 찍었죠. 80년대 초 자이스 이콘사에서 만든 중고 카메라를 40만원에 샀어요. 그런데 똑같은 사진을 찍어 인화했는데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펜탁스로 찍은 것과 입자 차이가 엄청나게 나더라고요. 발색과 콘트라스트(명암 차이)도 다르고요. 그때부터 자꾸 이 카메라, 저 렌즈를 만져보고 테스트하게 됐죠.”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옥외광고 사업을 했다. 사진은 그의 취미이자 일이기도 했다. 직접 찍은 사진들이 버스나 택시의 광고 사인에 인쇄돼 거리를 달리곤 했다. 중국 계림 지역의 계단식 논을 찍어 2001년 사진작가로서 개인전을 열었다. 취향에 맞는 카메라와 렌즈를 찾아 테스트하는 일은 계속됐다. 눈에 띄는 물건은 형편이 되는대로 사들였다. 손에 넣은 걸 되파는 성격은 못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전문적인 수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1 콤파스. 1936년. 영국 귀족들이 라이카를 능가하는 카메라를 내놓겠다며 스위스의 시계 제조사 리쿨트르에 의뢰해 만들었다. 담뱃갑만 한 몸체에 파노라마 헤드·내장 필터 장치·후드·존 시스템·스파이 기능 등을 모조리 집어넣은 작고 정교한 카메라.

“지금 뒤돌아보면 먹고살 만해진 뒤부터는 나보다는 남을 좀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위상에 걸맞지 않게 카메라박물관이 없으니 한번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은 게 93년께예요. 그때부터 카메라 발전사에 맞춰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전투적으로 모은 것은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다.

“형편이 어려워지니 카메라를 중고상에 내놓는 사람들이 많았죠. 환율 문제까지 겹쳐 일본인들이 반값에 주워가는 걸 보곤 울화가 치밀었어요. 돈을 빌려서라도 카메라를 사들였어요. 위기를 넘기고 사업이 좀 잘되면서는 중요한 것들을 모았고요.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상당수를 구입했고, 아르헨티나·뉴질랜드·오스트리아 등 1900년대 잘살았던 나라에서 좋은 물건을 많이 건졌죠.”

100여 개국을 다니며 수집한 물건들로 2004년 서울 신림동에 박물관을 열었다. 현재의 박물관(과천 대공원역 앞)으로 옮긴 건 2007년이다. 카메라만 3000여 대, 렌즈와 각종 부자재 등을 포함하면 1만5000점이 넘는다. 수집품 수준으로 보면 세계적 수준이다.
“지금도 꼭 손에 넣었으면 하는 물건이 다섯 개쯤 됩니다. 그것들부터 먼저 구입했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업을 하지 않아 자금 여력이 없어요.”

박물관을 열면서 사업은 접었다. 마침 사업이 하락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박물관 일이란 게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이기도 하다.“카메라도 기계식 시계처럼 3~5년에 한 번씩 분해 청소를 해 줘야 원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 수리 비용이 장난이 아니죠. 라이카 같은 건 한 번 만지는 데 15만~20만원이 들어요.”

그는 사무실의 진열장에서 라이카 MP를 꺼내 보였다. 보디의 가죽이 새끼 손톱 크기만큼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잘 보관했는데도 이렇게 떨어져 나갔어요. 한 대에 3만 달러가 넘는 건데, 이런 손상이 있으면 가치가 확 떨어지거든요.”항온·항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카메라도 일종의 생명체다. 습하면 곰팡이가 슬고, 건조하면 외피가 떨어져 나간다. 그래도 관리만 잘하면 100년, 200년이 지나도 끄떡없이 사진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날로그 카메라다. 반면 디지털카메라의 수명은 길어야 15년이다.

“모은 것들을 기증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러나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면 그 상태에서 멈추고 말아요. 수리 예산을 세울 수도 없고, 새로운 것을 사서 모으는 일도 못 하게 되는 거죠.” 애정과 헌신 없이는 끌고 갈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박물관 운영에 연간 5000만~6000만원만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이 길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매년 5000만원씩 어딘가에 기부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대단히 칭송받을 겁니다. 사립 박물관들 중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곳은 없어요. 사명감으로 헌신하는데,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해도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클 거라 생각해요.”


중앙일보 10년차 기자다. 그중 5년은 문화부에서 가요·방송·문학 등을 맡아 종횡무진 달렸다.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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