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류 고급화로 이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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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광객에게 막걸리 구매는 빼놓을 수 없는 한국 관광코스다.

이코노미스트 최근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일본 언론인을 초청했다. 엔고로 급격히 증가했던 일본인 관광객이 신종플루로 잠시 주춤한 사이 다시 한 번 한국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홍보의 초점은 더욱 건강과 웰빙에 맞춰졌다.

일본 막걸리 열풍 다시 보기 #수출 90% 일본으로 … 고급화·다양화가 ‘지속가능’ 변수

이번 행사에는 특별히 막걸리 시음회가 들어 있었다. 각 지방의 맛 좋다는 막걸리를 모아 맛을 보고 전문가에게 막걸리의 유래와 맛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공식행사의 건배주로도 막걸리를 선택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한국관광공사 신서경 과장은 “최근 일본에서 건강음료로 막걸리가 주목 받고 있는 것을 계기로 이번 기회에 좀 더 다양한 막걸리를 상세히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막걸리 수출량을 보면 일본에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 7월 27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막걸리 수출량은 2635t으로 금액으로는 213만4000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중량은 16%, 금액은 13% 늘어난 것이다. 막걸리 수출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1998년 631t(61만4000달러 상당)에서 10년 만인 2008년 5457t(442만2000달러 상당)으로 8배 넘게 증가했다.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 막걸리를 가장 많이 찾은 나라는 일본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올 상반기 전체 수출량의 89%(2336t)를 수입했다. 수출량 증가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간 셈이다.

검은콩막걸리 등 ‘웰빙주류’로 인기

일본에서 유독 막걸리가 인기인 것은 한류 붐을 타면서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막걸리를 찾고, 발효주인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판매업체인 ‘e막걸리’의 오자와 대표는 “막걸리의 인기 비결은 부드럽게 넘어가 마시기 쉽고 건강에도 좋다는 인식이 많아 남녀노소 불구하고 웰빙을 추구하는 고객에게 인기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판매한다는 전략으로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막걸리를 마셔본 사람이 또 일본에서 막걸리를 찾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검은콩막걸리, 포도막걸리, 제주감귤막걸리 등이 인기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막걸리를 주문해 먹는 사람들의 상품평을 보면 역시 부드럽고 독특한 맛을 매력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도쿄나 오사카 등에 비해 막걸리가 알려지지 않은 홋카이도의 20대 주부는 “주부들 모임에서 일본 사케도 못 마시는 친구가 검은콩막걸리는 맛있다며 곧잘 먹었다”고 말했다. 또 한국 여행 중에 맛본 막걸리를 다시 일본에서도 맛보기 위해 마신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마신 막걸리보다 약간 도수가 높은 것 같지만 좋았다.” (35세 도쿄 거주 남성), “한국에서 먹은 막걸리와 거의 차이가 없고 다양한 종류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62세 지바현 거주 남성) 한류의 주역인 연예인들도 막걸리를 통해 맛 한류를 또 한 번 일으키고 있다.

2006년 도쿄 시로가네의 한국 전통음식점 ‘고시레(高矢禮)’에 이어 지난해 나고야에 전통술집 ‘고시레 화(火)’를 오픈한 배용준은 국순당과 함께 고시레 막걸리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고시레 막걸리’는 6병을 묶은 한정판 패키지 300세트가 판매 시작 8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연예인 이수만씨가 운영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일본 현지법인 SM재팬도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 미사아자부에 문을 연 한국음식 전문점 포도나무에서 막걸리를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살얼음으로 덮인 셔벗 형태의 고급스러운 막걸리를 식사 전에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인이 보여준 막걸리 사랑은 한국 호텔과 유통업체들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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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관광객이 막걸리를 찾기 시작하자 호텔 및 유통업체들도 막걸리를 적극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투숙하고 있는 롯데호텔의 한식당 무궁화는 지난 4월 25일부터 막걸리를 팔고 있다.

막걸리가 저렴한 서민의 술이라는 인식과 달리 이곳의 막걸리는 2만~6만원 정도에도 잘 팔린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막걸리가 담기는 술잔도 따로 주문 제작했고, 안주도 개발했을 만큼 신경을 써 일본인 관광객의 호응이 크다”며 “막걸리의 고급화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여행을 왔다가 사가는 일본인 관광객이 늘자 백화점에서도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다.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 백화점인 롯데백화점 서울 소공동 본점은 작년 11월부터 와인매장 내 대중주류 코너에서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막걸리를 판매하게 된 것은 일본인 사이에서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백화점에서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지난해 12월 판매량이 259병이었다가 올해 1월에는 657병, 2월에는 1120병이 판매되는 등 올 초부터 꾸준히 인기를 올리고 있다.

일본에서의 막걸리 인기가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재 일본 수출을 준비 중인 참살이막걸리 강환구 대표는 “일본의 벽이 여전이 높다”며 “원료의 차별화를 통해 한국 대표 술인 막걸리를 고급해 나가지 않으면 앞으로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서도 관광객에게 막걸리 제공

참살이막걸리는 100% 친환경 국내산 쌀을 원료로 막걸리를 제조해 국내에서는 3배 정도 비싼 가격에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막걸리는 국내에서 저가로 인식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도 값싼 수입쌀을 주원료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막걸리가 아직 고급술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케, 독일의 맥주 그리고 와인은 모두 자국 원료만을 사용해 자국 농가를 돕고 친환경 이미지를 함께 가져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막걸리를 고급화·다양화하지 않으면 일본에서의 인기는 오래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인들은 과실이나 여러 첨가물과 혼합해 맛을 낸 막걸리를 즐기고 있습니다.

보통 고급술은 칵테일로 마시지 않지 않습니까? 또 지금 만들어지는 많은 막걸리는 우리의 발효과학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인이 접하는 막걸리는 종류가 한정돼 있어 현재로선 와인처럼 긴 생명력을 갖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자체에서 인기가 있지 않으면 한국의 술 막걸리가 생명력이 길 수 없다는 지적은 새겨볼 만하다.

현재 막걸리 등 탁주와 약주 등 전통주가 주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불과하다. 우리도 잘 마시지 않는 술을 일본에서 계속 찾아주길 기대하긴 무리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사케를 비롯한 전통주가 전체 술 시장의 12%를 차지한다.

임성은 기자·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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