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화두 삼은 두 화가의 개인전 동시에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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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며칠 있으면 제주도에서부터 벚꽃이 피어 북상한다고 한다.

봄의 예감은 화랑가에서도 주춤하지 않는다.

24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자연' 을 화두로 붙잡은 두 화가의 채색화전이 동시에 열린다.

우선 '자연의 요소 (The elements of nature)' 라는 주제로 이인수 (45) 씨가 갤러리 현대 (02 - 734 - 6111)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대 미대와 파리 에콜 드 보자르를 졸업한 이씨는 차분한 색조를 바탕으로 마티에르 질감이 진하게 묻어나는 추상화를 선보인다.

그는 재료학에 관심이 많아 책도 썼으며, 나뭇재와 연탄재.돌가루를 섞어 직접 안료를 만든다.

재의 텁텁함이 그가 오랫동안 즐겨 사용하던 단청류의 원색이 띠는 강렬함을 가라앉혔다.

동시에 그의 색은 투명하다.

속이 보일 듯하다기보단 침착하게 가라앉은 데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군데군데 오려붙인 거즈와 인공적이면서도 우연의 효과를 노린 실과 끈의 공로다.

이 실과 끈이 연출해낸 선과 면 틈에 자리잡은 숫자와 글자.기호는 현대문명의 압축이다.

불과 물, 흙과 공기 등 우리가 전통적으로 '자연의 요소' 라 알아왔던 것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선과 색은 부정형 (不定形) 과 불규칙이라는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금호미술관 (02 - 720 - 5114)에서 개인전을 갖는 도윤희 (38) 씨는 역시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기억 속 시간의 축적을 이야기한다.

그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2H~4B까지 다양한 연필로 드로잉을 한 후 바니쉬를 칠하고 다시 이 과정을 15~20회 반복하는, 어찌 보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중첩' 의 과정을 고집한다.

니스칠한 장판 바닥을 연상케하는 반짝이는 화면은 연필 흑연을 고정시키는 기능적 역할도 하지만, 신비주의적이고 회상적 관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존재 - 숲' '존재 - 부유' 등 전시되는 25점이 "뜻없이 그렸는데 그려놓고 보니 자연의 모습을 닮아있더라" 고 설명한다.

자연 혹은 인생의 불변성과 가변성을 세련된 미감으로 다루는 점이 그의 매력이다.

다만 매년 한차례 꼴로 지나치게 잦은 개인전을 열다보니 속으로 진득하게 묵혀 나온 변화와 도약을 위한 시도가 희미해지는 점이 아쉽다.

도씨는 19~28일 박영덕화랑 (02 - 544 - 8481)에서도 전시를 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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