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흔들리는 美 '외교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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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기 2년이 채 남지 않은 빌 클린턴 정부의 외교행적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한때 정적 (政敵) 이었던 밥 도울까지 특사로 내세워 코소보사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클린턴의 노력이 별 효험없고 인권탄압.첨단기술 유출.무역마찰 등으로 감정대립이 격화되는 중국과의 관계도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임 대통령의 마지막 2년은 집권당의 정책에 흠집내려는 야당의 공세 속에 대선분위기와 범벅되는 것이 미국정치의 통례다.

그런데 클린턴 정부의 대외정책이 일관성 결여와 원칙없는 임기응변식 대응이란 비난에 시달리는 까닭은 국내정책 만큼은 흠 잡히지 않을 정도의 성공을 거둔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탈냉전시대 새로운 전략환경에서 펼쳐지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낯선 도전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비틀거리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우리의 경우를 비춰볼 때 생각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삐걱거리는 미.중관계는 항간의 근거없는 기대와 달리 우리 정부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좁혀놓게 될 것이다.

대북 (對北) 포용정책을 보는 미.중 양국의 미묘한 입장차가 밖으로 불거질 경우 결국 부담스러운 것은 우리다.

인도.파키스탄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미 정부의 달라진 입장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운명적으로 동침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새겨볼 대목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길들이기에 지친 미국이 공습을 멈추지 않고 후세인 압박에 주력하는 동시에 역내 아랍국가들의 불만 무마에 나서는 모습도 어처구니없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

진행중인 뉴욕 북.미협상이나 마무리 안된 페리보고서를 놓고 법석떨며 미국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생존전략을 차분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구하는 작업이 생존전략 모색의 출발이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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