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패트롤] 주초 농·축협 개혁청사진에 촉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아직 한기가 남아있긴하지만 경칩을 지난 날씨는 어김없는 봄이다. 이제 새로운 생기가 돌아야할 농촌에 조춘 (早春) 부터 어두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농.축협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정부의 관리부재가 이에 맞물리면서 이른바 '총체적 부실' 이라는 비판과 함께 구조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협동조합의의 구조개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생산자조합이라는 존재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사업 대신 신용사업이라는 곁가지가 본업으로 자리잡는 주객전도 (主客顚倒) 의 상황은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란 얘기다.

이 문제는 최근 수차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왔음에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하면서 항상 용두사미로 끝나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주초 정부가 발표키로한 농.축협 개혁방안은 중요한 관심사다.

신용.경제사업의 분리 및 경제사업의 활성화, 비대.관료화한 중앙회 조직의 혁파 등 큰 줄기를 정부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뿌리깊게 그 세력을 확대해온 '농업 화이트컬러' 의 저항을 어떻게 막아내 진정한 '농업 블루컬러' 의 협동조합으로 만드냐는 것인데 그 작업은 그야말로 정권을 거는 차원의 비상한 의지가 필요할 정도로 지난 (至難) 한 것임을 먼저 알고 시작해야한다.

지난 주 눈길을 끈 또 하나의 '사건' 은 현대그룹의 분가다. 자동차소그룹을 꿈꾸던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을 맡아 떨어져나가고 정몽구 현대그룹회장이 현대자동차까지 맡게된 것은 국내 재벌가에서 이뤄지는 '권력이동' 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의 적장자 (嫡長子) 상속 관습은 뿌리깊은 것이고 창업형제를 일컫는 이른바 '1.5세' 는 결국은 제한된 역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정세영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형님 덕분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고 나와 아들을 위해 배려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 고 한 대목은 많은 것을 느끼게했다.

최근 주총시즌이 본격화되면서 소액주주들이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사실 그동안 국내기업의 주주 - 특히 소액주주 - 들이 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이른바 오너의 전횡이 기업 불투명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모습은 바람직한 측면이 많다.

이와 관련해 지난주 삼성전자와 SK텔레컴등 주요 재벌의 주력기업들이 주총을 앞두고 참여연대 등이 제기한 요구사항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나선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다만 이같은 소액주주운동이 아직 역사가 일천해 기업 (또는 최대주주) 이나 소액주주 양쪽에서 약간의 삐걱거림이 느껴지지만 이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좋은 쪽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태욱 경제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