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 신작 단편 '강물…'김동리 추모의 정 곳곳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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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만해의 싯귀는 이런 경우일까. 김동리가 세상을 뜬 지 3년여. 소설가 서영은씨가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에 오랜만의 단편 '강물 -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空無渡河)' 를 발표해 화제다.

주인공 '여옥' 은 학교 때 은사였던 남편과 삼십년 터울. 몇해전 상처 (喪妻) 하고 여옥과 재혼한 남편은 이미 5년전 정년퇴임, 여옥의 표현을 빌면 "성취할 것 다 하고, 누릴 것 다 누리고,가질 것 다 가진, 여유로운 말년" 이다.

반면 초혼인 여옥은 남편이 친구들이나 불러 저녁을 먹자는 오늘도 번역일에 쫓겨 애를 태운다.

결혼 전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나이차는, 남편의 서가에 여옥이 태어나기도 전의 장서가 가득 꽂힌 것을 확인할 때처럼 도처에서 낯선 얼굴을 내민다. 게다가 요즘들어 남편은 저녁마다 술잔 기울이는 일이 잦다.

그는 농담처럼 "나는 이 시간이 왜 이렇게 무서울까" 라고 자신을 사로잡는 침울함의 정체를 흘리지만, 여옥은 도무지 두려움의 실체가 잡히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이미 도입부에서 실제 나이차이가 꼭 30년이었던 김동리.서영은 두 사람을 떠올렸을 터. 남편의 온갖 자질구레한 습관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특히나 살뜰하다.

그러나 여기에 중첩되는 공무도하가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를 이승.저승을 가르는 이별, 생의 의미.무의미에 대한 보편적 정서로 밀어나간다.

서영은씨는 "지인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 고 실화적 요소를 인정하면서도, 지극히 함축적인 4행 한시 (漢詩) 로만 전해지는 공무도하가에 매료된 마음을 털어놓는다.

"아내의 소리를 듣지못하고 강물로 걸어들어가는 남편, 그런 남편을 마구 불러대는 아내의 내면을 상상해봤다" 는 것이 그의 말. 소설 속에는 오늘밤 남편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온전히 지켜보는 것으로, 그의 가는 길을 유예하고픈 아내의 마음이 그려진다.

설화란 인간사의 원형인 동시에 치유제인 모양. 서씨는 "쓰고 싶어도, 십년 가까이 제대로 글을 못쓸 형편이었다" 면서 "설화나 신화에서 오늘의 삶의 밑그림을 읽어내는 작업에 몰두, 앞으로 2, 3년간은 글쓰기에 꼬박 몰두할 참" 이라고 밝힌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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