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소화마을 정착 동포들 노령연금 갑자기 끊겨 발 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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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오목리 소화마을에 영구 귀국한 백기부(70·右)씨 등 사할린 동포들이 기초노령연금이 공제된 생활비 지급 명세서를 보고 있다. [아산=김성태 프리랜서]


 충남 아산시 신창면 오목리에 있는 소화마을 임대 주공아파트 단지에 사는 백기부(70)씨. 러시아 사할린에서 태어난 백씨는 지난해 11월 13일 부인 백영순(64)씨와 함께 고국으로 영주 귀국,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최근 담배 양을 하루 한 갑에서 이틀에 한 갑으로 줄였다. 그의 부인도 과일 등 부식 값을 일주일에 5만원에서 3만여 원으로 줄였다. 백씨는 “정부가 노령연금을 준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며 “수입이 준 만큼 생활비를 아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화마을에 정착한 러시아 동포들(51가구 104명)의 얼굴에는 요즘 수심이 가득하다. 당초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에게 1인당 월 8만4000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던 기초 노령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수입원이 없는 이들에게 노령연금은 한 달 아파트 임대료(9만5000원)와 맞먹는 큰돈이다. 노령연금 지급 문제는 지난해 9월 외교통상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사할린 제1도시인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 문화회관에서 동포들을 상대로 영구 귀국 설명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영주 귀국하면 국민임대아파트(66㎡·20평형)를 제공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2인 가족 기준 생활비로 월 65만여 원과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 노령연금을 별도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당한 부모를 둔 60~70대의 동포 2세들은 노령연금까지 받으면 부부가 월 81만8000원으로 고국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지난해 11월 한국행을 택했다. 소화마을 동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40여 명은 올 2월 주민등록을 취득한 직후 관할 면사무소에서 기초 노령연금 지원신청을 했다. 이후 4개월 동안 노령연금을 받았다. 그러나 6월부터 생활비 지급 계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받아 온 노령연금이 빠진 채 생활비만 지급됐기 때문이다.

동포들은 정부와 아산시에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정부가 약속했던 돈을 왜 주지 않느냐”며 따졌다. 그러나 “관련 규정(노령연금법)이 바뀌어 2008년 1월부터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기초 노령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4개월간 준 노령연금은 행정 착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외교통상부 일본과 박은경 2등 서기관은 “기초 노령연금 지급 관련 내용은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동포들에게 설명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할린 출신 정정란(66·여)씨는 “정부가 해외 동포에게 거짓말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는 1997년부터 사할린 강제징용 동포 귀국사업을 추진, 지금까지 2942명이 영주 귀국해 아산, 충북 청원, 부산, 경남 창원 등지에 살고 있다.

아산=김방현 기자 ,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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