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경제팀장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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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운동경기에서 주장의 역할은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팀을 대표해서 공격권을 가리는 추첨을 하거나 판정에 항의할 때 앞장서는 정도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 주장선수의 존재감은 겉으로 드러난 역할을 훨씬 능가한다. 주장은 팀을 이끄는 야전사령관이다. 선수의 기용과 작전은 감독의 몫이지만 실제 그라운드에서 승패는 주장의 리더십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 중에 선수들을 독려해 팀의 사기를 올리고, 훈련 중에도 선수들을 다독여 팀워크를 짜야 한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 역할도 주장의 몫이다.

이처럼 주장의 역할이 크고 많다 보니 아무나 함부로 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장은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야 함은 물론 선수로서 능력이 출중해야 하고, 상당한 경력과 인격까지 겸비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선수들이 주장을 믿고 따를 수 있다. 이런 조건을 다 갖춘 주장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팀의 주장을 맡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되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경력도 많고 경기력이 우수한 선수 중에는 주장을 맡기를 꺼리거나 고사하는 경우도 많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할 각오가 서지 않고는 주장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다루는 고위직을 통틀어 관행적으로 경제팀이라고 부른다. 경제정책을 다루는 부처가 여럿이지만 각 부처의 업무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데다 나라 경제를 잘 운영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운동경기의 팀에 빗댄 표현은 적절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이 경제팀의 주장을 바꿨다. 아니 바꿨다기보다는 새로 주장 자리를 만들었다. 최근 청와대 조직개편을 통해 차관급이던 윤진식 경제수석더러 장관급 정책실장을 겸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이 정부의 경제팀엔 주장이 없었다. 과거 경제부총리 직이 있었을 때는 부총리가 자연스럽게 경제팀장 역할을 맡았지만 지난 정부 때 경제부총리 자리를 없애고 나서는 공식적인 경제팀장 역할 역시 없어졌다. 세제와 예산편성권을 쥔 기획재정부 장관을 편의상 경제팀의 수장이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명시적으로 팀의 주장 역할을 맡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부처 간에 이견이 있어도 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경제부처는 물론 보건복지가족부나 노동부처럼 경제와 깊이 관련되면서도 딱히 경제부처라고 하기 어려운 경우엔 다른 목소리를 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과거에 경제부총리가 경제팀장 노릇을 했다지만 다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김학렬 수석이나 전두환 대통령 시절 김재익 수석처럼 경제수석이 경제부총리를 제치고 경제팀장 역할을 한 적도 많았다. 경제팀의 주장이란 자리가 감독인 대통령의 신임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아예 경제팀의 주장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통령 스스로가 경제를 잘 아는 만큼 따로 경제팀장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대통령 자신이 감독이자 주장이었다. 각 부처 장관과 경제수석은 감독 겸 주장선수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됐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 정책실장 자리를 신설해 윤 수석을 기용한 것은 경제팀 주장의 필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감독과 주장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다. 이 대통령은 내친김에 정책실장에게 교육·복지·노동 분야까지 몰아주어 명실상부한 경제팀 주장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윤 실장은 여러모로 주장의 자질을 많이 갖춘 인물이다. 감독의 작전지시를 따라 선수들을 잘 이끄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감독에게 조언과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금상첨화다. 감독도 주장을 믿고 일상적인 경기운영은 주장에게 확실히 맡길 필요가 있다. 코치 격인 경제특보의 역할도 분명히 해야 한다. 감독과 코치, 주장이 제각기 선수들에게 지시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수가 있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