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전문기자의 생활경제 이야기] 로스쿨 정원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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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오는 16일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로스쿨(법학 전문대학원) 설립과 관련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로스쿨을 도입해선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입학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반면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 수준(연 1200명)으로 정원을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정답이 분명한데도 왜 이같은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일까. 국민들에게 관심있는 것은 로스쿨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질 좋은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역으로 말하면 로스쿨이든 현행 시험제도든 법률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지 않는 제도 개혁은 국민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사개추위가 추진해야할 사법제도 개혁의 핵심은 변호사 시장의 문호 개방이어야 한다. 변호사 공급이 많아지면 수요자가 득을 본다는 것은 경제이론을 들먹일 것도 없다.

최근 수년 새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시민단체나 기업,관공서 등에 취직해 있는 변호사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당연한 일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데는 이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이 크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위협받는데 누가 찬성하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사시 합격자와 로스쿨 정원을 줄여달라고 정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경제학은 이를 '포획이론'이라고 부른다. 정부 규제를 받는 민간이 사냥꾼(정부)에게 자신을 '잡아가달라(더 규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로부터 면허나 특권을 받아 독점적 공급자로서 활동하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은 포획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사들도 의사 숫자가 늘어나는 데는 반대다. 국민들이 값싸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되는 것은 의과대학 정원이 제한돼 있고 이를 통해 의사 공급이 조절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에선 20세기 초 192개의 의과대학이 1944년 69개로 줄어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도 1900년 157명에서 57년 132명으로 감소했다. 미국 의사협회가 의사 공급량을 줄여달라고 정부에 매달린 때문이었다. 당시 명분도 '자격 없는 의사를 걸러내 국민들에게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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