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5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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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7장 노래와 덫

가시적 계기란 봉환의 하소연이 주효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를 향한 서투른 공략이 전혀 효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봉환의 과녁은 어느덧 손씨에게로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어렵사리 그와의 술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서문식당이 아닌 포구 안쪽 허술한 선술집으로 그를 이끌었다.

손씨도 봉환의 처지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단도직입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살아올 동안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 내가 희숙씨를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요. 눈물이 핑 돌면서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압니껴? 저 여자와 헤어지면 어떻게 하노 하는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게라요. 아가씨를 처음 만나서 인사도 나누기 전에 그런 요상한 심사부터 들었다카면 이게 지나쳐 볼 일이 아니잖습니껴. 형님은 내 말 뜻을 담박 알아묵겠어요? 아모래도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요?" 스스로 반문했던 것처럼 그녀에 대한 수사 (修辭) 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대전에 체류하고 있는 배완호에게 조언을 구했던 나머지 얻어낸 말의 성찬에다가 자신의 감정을 약간 양념처리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손씨의 반응은 기대치를 넘어서고 말았다. 소주병을 기울이다 동작을 멈춘 그는 봉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반쯤 벌린 입에서는 종래에선 보기 드문 감탄사가 금방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창문 너머 먼 데로 시선을 떨구는 손씨의 입에선 감탄사 아닌 푸념이 흘러 나왔다.

"희숙이가 눈깔이 삐어도 한참 삐었구만. 처음 대면에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는 준수한 남자를 몰라보고 주머니 털어 봐야 땅콩껍질밖에 없는 백수건달을 바라보고 있다니… 차라리 내가 발등을 찍고 싶군. 그러나 내가 사심없이 객관적으로다가 얘기할까? 봉환이 같은 남자가 애인 있다는 여자에게 매달리는 까닭이 뭐여? 저 깔린 게 기집 아녀?"

"그런 말씀 마소. 서해바다가 전부 여자라 카더라도 내 눈에는 희숙씨만 여자로 보이는데 이런 낭패가 없네요. 설혹 그 남자와 몇 번 같이 잤다 카디라도 나는 상관없심더. "

그때였다. 봉환에게는 느닷없는 찰나에 두 눈에서 번갯불이 지나갔다. 손씨가 소주잔을 든 채로 그의 따귀를 휘갈긴 것이었다. 얻어맞은 봉환이가 우두망찰하고 있는데, "말이면 다야? 근본이 갯가 놈이라고 깔보는 거야 뭐야? 그래 좋다. 갯가놈이라 하자, 갯가놈이라 해서 가풍도 없이 막가는 줄 알어? 희숙이가 그 자식에게 매달려 있는 것은 의리 때문이었지 몸을 줬기 때문이 아녀. 희숙이가 그렇게 헤픈 여잔 줄 알았다간 큰코 다쳐. "

"형님 고정하십시오. 말이 그렇다는 이바구지 내가 언제 희숙씨가 그느마하고 잠자리에서 뒹구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껴? 그기 아니라요. " "그럼 뭐여?"

"설사 그런 불상사가 있었다 카더라도 한번 다잡아 먹은 내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카는 사실을 형님이 알아달라고 한다는 기 그런 애꿎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게라요.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어. 그 말 취소할거지?" "아직 식지도 않은 말인데 금방 주워 담으면 될 거 아닙니껴. 취소했어요. "

"사람이 틀바가지가 겉보기보단 맹추구만. 그깐 대수롭지 않은 여자 마음 한 가지를 냉큼 돌려 놓지 못해서 두 달 가까이나 궁상을 떨고 있나? 그동안 나무를 찍었다면 백번은 찍었겠다. 우리집 사람이 지성껏 거들어 주고 있는 눈치던데, 이제 와서 나한테까지 훈수를 들어 달라고 징징 짜고 있다니, 이런… 딱한 위인하구선. "

"형님이 나서서 거들어 주십시오. 내가 희숙씨하고 짝이 되면 고생시키지는 않겠습니더. " "그 알량한 수입 가지고 고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 예사롭게 튀어나오나?" "그럼 어떻게 합니껴? 내 주제가 그것뿐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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