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걸어온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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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태동.성장기

중앙일보의 창간정신은 65년 창간 당시의 흑백사진 한 장에 그대로 담겨 있다.

창간호를 안고 거리로 내달리는 배달소년들의 건강한 미소. 모든 사람에게 밝은 내일에의 희망을 주고자 중앙일보는 출발의 닻을 올렸다.

동양방송과 함께 중앙매스컴의 한 축으로 출발한 중앙일보는 신생 신문사로서 기틀을 다지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쏟았다.

최고의 신문을 제작하기 위한 최고의 시설, 최고의 인재라는 기치는 한국 신문 발전의 촉매역할을 했다.

그 결과 78년 국내 신문 최초로 발행부수 1백만부를 돌파하는 급성장을 기록했다.

- 시련.도전기

탄탄대로를 달리던 중앙호 (號) 는 80년 11월 30일 군사정권의 강제 언론통폐합 조치로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동양방송 (TBC) 깃발이 내려지던 그 날, 중앙인들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슴속에 묻어야 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좌절을 딛고 재기에 나서 차별화된 기획과 편집, 컴퓨터 제작 등 재도약의 노력을 펼쳤다.

- 재도약기

94년 언론계의 최대 뉴스는 단연 '제2창간' 을 선언한 중앙일보 개혁이었다.

선진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국 신문의 취재 및 편집의 틀을 바꾸는 시도들이 잇따라 취해졌다.

지면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대기자와 전문기자 제도가 실시됐고 그해 9월 국내 신문 최초로 '섹션신문' 체제를 도입했다.

95년 3월엔 국내 언론사 최초로 인터넷 신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앙일보의 개혁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고 95년 4월 조간화에 이어 10월 9일 (한글날)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 독자들의 폭발적인 성원을 얻었다.

이와 더불어 중앙일보는 94년부터 자원봉사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펴 뿌리내리게 했으며, 97년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문화유산을 방북 취재하고 홍석현 사장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으로 중앙일보는 98년 주요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수차례 조사에서 열독률 1위를 기록, 정상의 언론으로 인정받았다.

- 제2창사

99년 3월 2일 중앙일보는 삼성과의 분리를 통해 자립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한 또 한번의 계기를 마련했다.

중앙일보는 창간호를 배달하던 소년들의 표정처럼 독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달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신문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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