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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살리는 생태하천 <중> ‘예쁘게’만 복원…폭우 한번에 산책로·갈대숲 엉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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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29일 서울 홍제천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지난달 폭우로 인해 일부 구간에서는 수초가 쓸려 나가기도 했다. [안성식 기자]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 옆 홍제천. 무더운 평일이었지만 하천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높이 25m의 인공폭포 아래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은 지난해 6월부터 한강 본류에서 매일 4만3000㎥의 물을 끌어와 홍제천 상류에서 흘려보내고 있다. 올 2월 가동을 시작한 인공폭포도 이 물을 이용한다. 한강물을 여과한 다음 끌어오기 때문에 수질은 2급수를 유지한다. 2005년부터 시작한 홍제천 하천복원 사업은 2012년까지 621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지난달 11~12일 이틀간 200㎜의 폭우가 쏟아지자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설물은 나름대로 잘 버텼지만 물가에 심어놓았던 갈대 등 수생식물 일부와 물 가운데에 심은 식물이 쓸려 나갔다.

7월 폭우로 피해가 발생한 경남 창원시 창원천(上)과 가음정천. 수십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조성했지만 하천변 둔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물길이 생겼다.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제공]

지난달 초 인천시 연수구의 승기천 일부 구간(동막역~문학경기장 6.2㎞)이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6년간 379억원을 투자한 결과다. 지난달 14일 찾은 승기천 곳곳에서 폭우에 상처를 입은 흔적이 눈에 띄었다. 지난달 11~12일 이틀간 300mm의 폭우로 꽃밭이나 맨발 지압장이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다리 난간에 걸린 잡초와 쓰레기를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상태였다. 주민 김일영(68·인천시 주암8동)씨는 "일부 구간에 진흙탕이 생겨 자전거를 타다 미끄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여름 최악의 폭우가 쏟아진 부산은 더 심하다. 20개 복원하천 중 6곳이 피해를 봤다.

경남 창원시 창원천은 7월에 내린 두 차례 폭우로 둔치의 산책로와 어류 관찰 통로 등이 유실되고 새로운 물길이 생겨났다. 창원천은 2007년 말부터 30억원이 투입됐다.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임희자 사무국장은 “폭우가 심한 탓도 있지만 생태하천 취지와는 달리 창원시가 좁은 하천에 너무 많은 인공시설을 넣어 물의 흐름을 막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창원시는 훼손 원인을 가리기 위해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지난달 26~29일 현장조사를 했고 이달 안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하천을 조사한 결과, 일부 생태하천이 인공섬·관찰통로를 만드는 바람에 물 흐름을 방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태하천이 폭우에 피해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하천 특성이나 지형 환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국대 황순진(환경과학과) 교수는 “하천의 지역적 특성, 유역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설계를 하는 바람에 전국에 생기는 생태하천은 어디나 비슷비슷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달 26일 ‘하천 홍수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복구지침’을 배포했다. 하천을 엉터리로 복원하는 것을 막고 빈발하는 집중호우에 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주요 내용은 ▶하천시설물을 설치할 때 물 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검토할 것 ▶공사 후 시설물과 지반이 안정화되는 기간을 고려할 것 ▶인공시설물과 토사가 접촉하는 취약 부분에는 침식 방지 공법을 적용할 것 등이다.

충남대 서동일(환경공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물이 어디로 모이고 어디로 가는지 예상하고 설계를 한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관계기사 보기] 도시 살리는 생태하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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