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미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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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명작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 에는 지금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한 군데 나온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재판을 받은 적이 없으며, 단지 출세욕에 눈이 먼 검사의 독단적인 종신형 '선고' 에 따라 지중해 한복판의 샤토 디프 요새 감옥에 갇힌다는 점이다.

출세가 약속돼 있었고, 아름다운 약혼자 메르세데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게 당테스의 죄라면 죄다.

그의 출세를 시기한 직장동료와 그의 약혼자를 사랑하는 연적 (戀敵)에 의해 나폴레옹의 첩자라는 모함을 받는 것이다.

이 작품이 씌어진 1백50여년전의 프랑스에는 검사가 '선고' 를 할 수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죄가 있든 없든 재판을 받지 않았으므로 당테스는 어디까지나 미결수다.

설혹 죄가 없더라도 재판을 받아 형이 확정됐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당테스는 아무런 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미결수의 상태에서 일평생의 옥살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판사가 결정할 일이지만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일단 무죄로 추정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며 헌법에도 보장돼 있다.

유.무죄를 기다리는 피의자 혹은 피고인을 보통 미결수라 부르는데 실상 그 용어 자체도 잘못이다.정확한 용어로는 '미결 (未決) 수용자' 라고 불러야 한다.

그들에게 인권과 신체적 자유가 보장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미결수들은 죄인 취급을 받는다.

기결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결수들은 교정 (矯正).교화 (敎化) 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결수에게 죄수복을 입히는 것은 잘못이며, 똑같이 재판을 받는 처지인데도 불구속 피고인은 사복을, 미결수는 죄수복을 입는 것도 형평의 원칙에 벗어난다.

지난 92년 6월 서울고법은 검찰이나 교도당국이 행정편의에 따라 미결수의 수용장소를 멋대로 옮기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

미결수에 대한 처우는 아직도 개선돼야 할 점이 많지만 법무부가 우선 법정이나 청문회 등에 출석하는 미결수에게 사복을 입을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죄가 있더라도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무죄인데 하물며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에게 죄수복을 입힌다면 그 억울함을 어디에다 호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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