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제적.유학.투병…24년만에 학사모 쓴 이다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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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는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입학 24년만에 학사모를 쓰게 된 이다우 (李多雨.44) 씨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75년 서울대 약대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李씨는 졸업 후 약사가 돼 시골에서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를 편히 모시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李씨의 인생은 유신체제라는 억압적 정치상황을 만나면서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 복학생 대표를 맡아 낮에는 시위현장을 뛰어다니고 밤에는 대자보를 붙이며 독재체제에 항거했다.

결국 82년 성적불량으로 제적을 통고받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李씨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83년 겨울 서독으로 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간호전문대에 등록했다.

유학 중 알게 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李씨는 91년 귀국, 모 일간지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두 남매도 태어났다.

그러나 李씨는 93년 왼쪽 무릎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악성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세번에 걸친 대수술은 李씨를 나락에 빠뜨렸다.

수천만원의 수술비 때문에 가산은 거덜났고 李씨는 후유증으로 좌반신불수 신세가 됐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부인과 두 남매를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방황하던 李씨가 서울대에 중퇴생을 위한 특례 재입학 제도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96년. 불편한 몸으로 날품팔이.노점상 등을 전전하던 李씨는 97년 고교동창들의 후원으로 관악캠퍼스를 다시 밟았다.

복학 후 李씨는 2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는 앞으로 약사고시에 합격, 장애인을 위한 약국을 차리는 게 남은 소망이라며 밝게 웃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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