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되살아나는 외화낭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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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외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김포공항 출국장이 다시 북적대고 있다.

이번 설 연휴기간에는 국제선 항공기 좌석을 못 구해 무역업무차 해외출장길에 나선 비즈니스 맨들이 애를 태운 경우도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IMF관리체제하에 있는 나라같지 않다는 외국인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달러부족으로 그 고통을 겪던 국민들이 이처럼 외화를 펑펑 쓸 수 있느냐는 우려일 것이다.

통계상으로 보면 그것은 단순한 걱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한달동안 관광목적으로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내국인은 8만6천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만1천명의 4배다.

이 기간 시중은행 김포공항지점에서 출국객들이 환전해간 외화만 해도 2천2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천10만달러의 2배가 넘었다.

설 연휴기간의 골프관광객도 지난해의 3배에 이르렀다.

이 겨울에 동남아국가의 관광객이 우리나라로 스키여행을 오고, 우리가 남쪽나라의 따뜻한 골프장을 찾아가는 것은 세계화시대의 풍속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IMF관리체제에 들어간지 겨우 1년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불과 1년 사이에 해외관광객이 4배나 늘고 외화사용액이 급증하면서, 수출전선으로 뛰어가는 일꾼이 관광객들 때문에 항공기 좌석을 구할 수 없게 됐다면 그것은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우리가 허리띠를 풀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소리다.

지난 1월중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봇물을 이뤘다는 소식도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달간의 사치성 소비재 수입실적이 6천5백만달러에 이르고,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나 늘어난 규모라는 것이다.

특히 골프용품의 수입액은 4백%나 늘어났다고 한다.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외화부족으로 국가부도사태가 목전에 왔을 때 장롱 속의 금붙이를 꺼내 들고 줄을 서던 게 엊그제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은 더하다.

아직은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제하는 모습이 국민적 합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해외관광객 급증 이유와 관련해 '한국관광' 의 경쟁력문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골프관광이든 일반관광이든 동남아여행과 제주도 여행이 비용에서 차이가 없다면 납득할 사람이 많지 않다.

같은 값이면 외국으로 나가려는 게 인지상정 (人之常情) 이라고 볼 때, 국내관광 비용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우리 관광업계가 시급히 풀어내야 할 과제다.

내돈 갖고 내가 쓰는데 무슨 말이냐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외화낭비 현상은 곧 자신의 이웃과 국민의 우려를 부르고 자기를 포함한 국민 전체가 부담감없이 자기돈을 자기가 쓰는 시대를 늦춘다는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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