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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불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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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인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물로 망할 뻔했다. 신의 잠을 방해한 탓이다. 신의 왕 엔릴은 수하의 신들에게 각종 잡일을 시켰다. 꾀가 난 신들은 진흙·침·피를 섞어 인간을 만든 뒤 대신 일을 맡겼다. 그런데 갈수록 늘어난 사람들이 소동을 피워대자 엔릴은 시끄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대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몰살시키려 했지만 다행히 다른 신의 폭로로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폴 마틴, 『달콤한 잠의 유혹』).

불면의 고통만큼 참기 힘든 것도 없다. 예부터 잠을 못 자게 하는 형벌과 고문이 횡행한 건 그래서다. 로마 군에 잡혀 투옥된 뒤 갖은 고초를 이겨낸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 왕도 결국 잠을 안 재우는 형벌을 견디지 못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전설이 있다. 최근엔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의 사례가 널리 알려졌다. 미군들이 24시간 불을 켜고 큰 소리로 음악을 트는가 하면 수감자들을 몇 분에 한 번씩 다른 감방으로 옮겨 한숨도 못 자게 했다는 거다.

감옥과 수용소만의 얘기가 아니다. 낮보다 환한 밤, 늘어나는 소음과 스트레스, 알코올과 카페인의 남용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잠을 빼앗는다. 토머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의 주민들은 하루 8시간씩 잤다는데 요즘은 6~7시간 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뿐인가.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 한국인은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불면에 시달린단다. 잠이 모자라면 집중력과 판단력이 흐려져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면역 저하로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고혈압·당뇨병·간질환의 가능성도 커진다. ‘불면증=죽음을 부르는 병’이 아닐 수 없다.

기나긴 부검 끝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인이 불면증 치료를 위한 약물 과다 투여로 드러났다. 잠 좀 자보려다 영원히 잠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3일 땅에 묻히는 그가 비로소 안식을 취하게 될진 자신할 수 없다. 고 최진실씨 유골 도둑처럼 망자들의 잠을 깨우는 못된 손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무덤에도 도굴꾼들이 들끓었었다. 1978년엔 찰리 채플린의 시신을 훔쳐간 뒤 몸값 60만 달러를 요구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기도 했다. 두 사람 묘를 두꺼운 콘크리트로 꽁꽁 둘러싸야 했던 이유다. 산 자도, 죽은 자도 맘 편히 잠들기 힘든 세상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