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액션 할리우드에 도전장-강제규감독 '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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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액션에만 치중한 영화는 그 단선구조로 인해 오히려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액션영화를 만들면서도 액션으로 그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었다. " 96년 '은행나무침대' 로 관객 1백50만명을 거뜬히 극장으로 불러모은 강제규 (37) 감독이 새영화 '쉬리' 에 대해 품은 야심은 여기서부터다.

뒷골목 깡패얘기 소재도 아닌 첩보 액션영화란 점 때문에 '대규모 예산' 은 피할 수 없는 일. 감독은 긴장과 스릴감 조성을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노하우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정도로 파괴의 미학을 연출해내는 감각도 남달라야 한다.

그래서 강감독의 첩보 액션영화 만들기는 무모해보일 만큼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일단 결과는 '쉬리' 가 국내 대형영화의 가능성을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다.

지난해 8월 개봉된 '퇴마록' (박광춘 감독) 이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로 그 가능성에 첫 시동을 걸었다면 '쉬리' 는 여기에다 공들인 시나리오의 힘을 빌어 탄탄한 이야기를 보탰다.

화려한 볼거리는 북한 특수8군단 소속 최고의 저격수 이방희 (박은숙) 의 활약과 이를 추적하는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 요원 유중원 (한석규) , 그의 동료 이장길 (송강호) 의 집요한 대치관계에서 나온다.

특수8군단의 훈련장면, 속도감 넘치는 편집으로 시각화한 살해사건들, 신소재 액체폭탄 CTX 탈취사건, 수족관 폭파장면 등으로 이어지는 남북의 작전과 대치상황은 할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는 힘있고 매끄러운 영상으로 펼쳐졌다.

예기치 않은 (?) 러브스토리도 있었다. 이방희를 좇던 유중원이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인 명현 (김윤진) 이 바로 그녀였음을 알고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종반부 장면은 이 액션영화를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로 완성시켰다.

강감독은 볼거리 많은 액션에 감성적인 러브스토리로 자신이 앞서 밝힌 '플러스 알파' 의 기대감을 실현한 셈이다.

배우 한 두명의 연기력에 의존하지 않고 탄탄한 조연까지 가세한 주.조연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감독의 의욕을 좇아가지 못한 빌딩 폭파신의 특수효과는 이 분야의 노하우 축적의 필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제기한 부분. 파워풀한 액션에 집착한 나머지 감성연기와의 리듬 조절에 소홀한 점도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국내 제작 여건을 딛고 북한전문 관계자들로부터 자문을 구하고, 미국에서 최첨단 장비와 무기를 공수해오는 등 볼거리와 리얼리티를 살리려한 노력이 빛난 '도전작' 임엔 틀림없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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